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한 화가는 어떤 것을 그릴까 골몰해 있었다. 결혼을 앞둔 신부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냐고 그가 묻자 신부는 ‘사랑’이라 말했다. 같은 질문을 받은 목사님은 ‘믿음’이라고 답했다. 군인은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평화’를 택했다. 화가는 ‘사랑과 믿음과 평화’를 가장 잘 품고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따뜻한 가정’의 모습을 그렸다. 책 ‘하늘양식’에 나오는 글이다.

사람들이 제각기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모아서 하나로 응축시켜 놓으면 ‘가정’이 가장 적합하다. 가족의 화목한 유대감 속에서 이뤄지는 일들은 어느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시인 김수영은 ‘나의 가족’이라는 시에서 가정을 ‘누구 한 사람의 입김이 아니라 모든 가족의 입김이 합쳐진 곳, 제각기 자기 생각에 빠져 있으면서 그래도 조금이나마 부자연한 것이 없는 곳, 유순한 가족들이 모여 죄 없는 말을 주고받는 곳’이라고 묘사한다. 이 시의 핵심 단어는 ‘모든 가족’이다. 가정은 가족 일원이라는 ‘존재감’이 큰 의미가 되어주는 곳이다. 따라서 식구 구성원 중 불의의 사고나 죽음 등 예기치 않은 일로 어느 누구의 존재가 없어지면 이미 가정은 깨진 것이나 다름없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처럼 남은 가족의 상실감은 진정한 회복이 어렵기에 하는 말이다.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것 주저앉게 만드는 것 모두 가족인 것은 만고의 진리다.

국민 모두가 심한 충격을 받았을 때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통증의 ‘상심증후군’에 빠져 있다. 가정의 달 5월이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로는 ‘가족’ ‘가정’이란 단어를 언급하기 미안하다. 우리들만 누리는 것 같은 심한 죄책감 때문이다. 유가족들이 국민모두에게 미안해 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 말조차 죄송하다. 팽목항에 쪼그리고 앉아 흐느끼는 엄마, 먼 바다를 초점 없이 응시하는 아빠의 슬픔은 전 세계의 부모들이 공감하는 깊은 슬픔이다.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자식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음을 자책하는 그네들의 고통이 자식보낸 고통에 얹혀질 것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깜깜해진다. 표현하기 어려운 극한의 고통이 그려진다.

조미현 출판기획부국장 mi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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