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규

한림대 교수·분권아카데미원장

세월호 사고의 희생과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정말로 크게 배우고 깊이 깨닫고 오래 간직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공공성의 회복이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의 공공성의 부재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사회의 공적 영역의 총체적 부실을 넘어 총체적 부패와 총체적 타락의 면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공공성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정부가 진정한 공공성의 창달을 위해서 노력한 적이 과연 있는가? 이 나라에 공공성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세월호는 우리에게 정부의 무능력함, 사회의 무규범성, 개인의 비도덕성을 총체적으로 드러낸 참사다. 공공이란 ‘여러 사람이 모여 힘을 함께 함’이라고 쉽게 이해되는 개념이다. 세월호에는 공공성이 없었다.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들을 다 구하고 배를 지키는 것이 ‘공공성’을 다하는 것이고, 해경도 사람부터 살리는 것이 그들의 공공성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대형 사고를 보면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 2011년 저축은행비리 등이 있다.

사건이 터지면 공통적으로 소위 ‘관피아’라 불리는 공공영역의 책임 문제가 대두된다. 공공성 확보가 정의실현의 관건인데 공공성이 작동하지 않는 정부실패의 문제가 항상 발생한다. 정부는 공공의 영역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지키는 대표적 존재다.

문제는 공공성에 대한 정부의 실패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시민과 시민사회가 공공성의 주인의식을 갖고 공공성에 관여하는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국가체계와 시장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인 우리나라에서는 공공성의 수축과 공공성의 부재의 위기가 발생하기가 쉽다. 시장사회에서는 공동의 이익이 존재하지 않으며 ‘공유지의 비극’과 같은 개인주의의 문제점이 발생한다. 공적영역을 효율성의 이름하에 민영화를 하는 것이 공공성의 파괴를 초래한다. 공공성과 신 자유주의적 가치가 충돌하는 부분이다.

정부는 공인의 합이라고 할 수 있다. 공인을 고시 같은 시험을 통해서 인재를 뽑는 시스템은 복잡한 한국의 현대 사회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 구시대의 유물이다. 고위직 공인을 시험으로 선발하는 ‘과거시험제도’는 정말 ‘과거’에 어울리는 제도일 뿐, 현대에는 답이 아니다. 공인에게 전문성이 요구되고 도덕성이 필요한데 시험제도의 한계로 도덕성과 전문성은 해결이 안 된다.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도 ‘해피아’라 불리는 거대한 먹이사슬이 산하기관, 관련단체, 해당업체와 연결되어 공공성이 실종되는 시스템적 위기를 만들어서 문제가 발생, 속수무책 증폭된 것이다.



사익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공성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정치권, 공무원, 정부 등 공공 조직이 주도한다. 공공성은 사전에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로 정의된다. 공공(公共)성의 쉬운 이해는 公과 共의 한자어에서 온다. 영어로는 Public과 Common이다. 공익, 공동체, 공감, 공인, 공유 등 공이라는 말은 정말 좋은 말이다. 공의 반대는 사(私)요, 개(個)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사와 개’가 넘치고 ‘공과 공’의 부족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공공성을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이 공개적인 의사소통의 절차를 통해서 공공복리를 추구하는 속성’으로도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공공성의 주체가 정부의 고유영역이라기 보다는 시민의 영역으로도 봐야 될 것이다. 정부의 실패를 수없이 경험한 시민이 이제는 개인으로서의 시민이 아닌 공인으로의 시민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공공성의 진정한 회복이 없다면 세월호의 대가는 너무너무 큰 것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개인으로서의 시민이 아니라 공인으로서의 시민으로 다시 태어나고 일어나야 할 때다. 이것이 시민들이 배울 세월호의 값비싼 교훈이요 우리가 갈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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