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공부를 좋아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안철수씨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치인보다는 학자가 더 맞는 것 같다고 평가한다. 공병호 칼럼니스트는 정치는 지나치게 논리적인 사람한테는 맞지 않기에 학자풍인 안철수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정치가 안철수씨는 대학강연 다닐 때의 안철수씨보다 더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남의 옷을 입은 듯한 불편함이 간간이 얼굴 속에 비춰진다는 말이다.

안철수씨는 자신의 저서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에서 ‘유학갈 때만 해도 경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경영학을 배우면서 누구나 노력여하에 따라 전문가는 될 수 있지만 성공적인 경영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이 말에서 ‘경제’를 ‘정치’로 바꿔보면 어떨까? 그러면 정치에서도 성공하려면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선천적인 자질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결론이 생긴다.

공자는 ‘국민이 정치를 느끼지 못할 때가 정치를 가장 잘 한 것이다’라고 무위(無爲)의 정치를 최고로 꼽는다. 장자는 마음을 비우고 상대방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소통하는 심재(心齋)를 강조한다. 노자 도덕경에는 정치가에게 화광동진(和光同塵)을 주장한다. 즉 자기의 재능을 감추고 자신을 누그러뜨리는 겸손으로 세상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좋은 정치가의 자질이라는 것이다. 성인들이 주장하는 이론을 살펴보면 정치가의 필수 자질이 무엇인지 감이 잡힌다 . 그러나 현실은 크게 다르다.

‘비록 고관대작들이라 하더라도 그가 한 말을 공평하게 검토해 보면 열 마디 중 일곱 마디가 거짓말이더구나’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 나오는 말로 이 글귀가 쓰여진 것은 약 200여년 전으로 추정된다. 성공적인 정치가가 되기 위한 자질이 이론과 실체가 상이한 것은 고금(古今)의 진리인 듯싶다. 이는 우리나라 정치가 후진함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다. 고위관직에 등용되는 인사들의 ‘차떼기사건 논문 가로채기 논문중복 게재’ 등 도덕적 민낯이 너무 부끄럽다. 원칙과 신뢰와 정의가 지켜지는 정치를 구경은 할 수 있을까? 글쎄다.

조미현 출판기획부국장 mi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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