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규

한림대 교수·분권아카데미원장

교양은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다. 우리 사회가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원하는 것이 바로 교양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학에서도 교양과목을 필수적으로 가르치는 이유다. 교양의 한자적 의미는 가르치고 기르는 것을 뜻한다. 영어로는 Culture(경작)로 독일어에서는 Bildung(형성)이라는 단어임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교양은 인간정신을 개발하여 풍성하게 경작하고 완전한 인격을 형성해 간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즉 교양은 개인의 형성과 완성에 관한 문제다.

시민교양은 무엇인가? 교양의 시민성을 강조한 의미다. 영어로 굳이 표현하면 Civil Culture다. 시민교양이 중요한 이유는 교양이 갖고 있는 시민적 사회적 속성이다. 시민교양이 왜 중요한가? 교양이 요구하는 방향성 때문이다. 교양은 개인적 교양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공익적 방향성을 요구한다. 우리는 사회를 이룩하는 구성원이고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개인보다는 시민으로서의 교양의 역할이 더 강조되어야 한다. 개인의 교양이 합쳐서 사회의 문화(Culture)가 된다. 교양과 문화가 같은 영어 단어라는 것은 교양의 사회성과 공익성을 보다 더 강조하고 있다는 의미다.

요즘 세상은 막막, 갑갑, 답답하다. 바다, 육지, 그리고 하늘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자연재해가 일어나야 정상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바다와 하늘과 육지에서 인재라 할 수 있는 대형사고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터지고 인간이 만든 선박, 비행기, 기차 관련 대형사고가 터지니 무엇인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것이 자리를 못잡고 있다. 상식적이지 못한 사건들이 계속 터지면 이것은 ‘답이 없거나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작금의 청문회 관련 문제도 비상식적인 인사사고라고 할 수 있다. 상식적이지 못한 일들이 계속 터지면 국민들은 막막·갑갑·답답할 뿐이다. 정치가 막가면 국민들은 막막하고, 경제 기득권이 갑질하면 시민들은 갑갑하고, 답 없는 해결책들이 나오면 사람들은 답답해진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시민교양이 답이다. 우리 사회의 개인적 교양 수준은 교육의 강조와 경제의 향상으로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교양의 사회적 수준인 시민교양은 아직 후진국 수준이다. 우리 사회에서 교양은 너무 사적(Private) 영역에서만 성장했을 뿐이다. 공동체적 교양수준은 아직도 후진국이다. 거리의 교통·운전 상황만을 봐도, 공공장소에서 소리 지르는 것을 봐도 우리는 교양후진국이다. 공적(Public) 영역에서의 교양을 시민교양이라 할 수 있다. 시민교양이 회복되고 선진화 되어야 상식적인 일들이 작동한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영역이 최소화되어야 하는데, 비상식의 영역이 극대화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정치는 사회의 비상식을 부추기고 비상식공화국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 정치는 교양부족, 시민은 시민교양부족으로 상호 악순환을 만들어 나가는 우리의 슬픈 현 주소다. 시민교양의 회복은 생각해 보면 그렇게 어려운 문제라 할 수 없다. 그저 상식의 회복, 공동체적 관심, 너와 나의 배려, 상호존중, 교통질서, 운전질서 등 작은 것들로부터의 시민적 실천이 필요할 뿐이다. 철학자 헤겔에 의하면 교양은 보다 사회적인 의미에서의 개인의 보편성의 실현을 지칭한다. 저마다 제자리로 자리매김을 하는 것이 보편성의 실현이다. 정치인은 정치가답게, 기업인은 기업가처럼, 종교인은 종교인스럽게, 공무원은 공무원같이 그리고 시민은 시민으로서의 제자리매김이 사회의 공적교양인 시민교양을 형성할 것이다. 성경의 황금률은 시민교양의 완전한 해답이다. ‘너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 상식의 보편적·적극적 실현이 시민교양을 자라게 하고 이 세상을 상식적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시민교양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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