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희

도교육감

올해로 우리 민족이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해 농사를 짓기 시작한지 150년이 된다. 1864년 함경도 농민 열 네 가구 예순 여명이 두만강 국경을 넘어 ‘하산’ 지역의 ‘시신허’마을에 초가를 짓고 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 세기 반이 흘러 지난 6일, 까레이스키로 불리는 러시아의 고려인들이 모스크바를 떠나 평양, 서울, 부산, 평창, 고성, 동해로 이어지는 1만 5000km의 유라시아 자동차 통일대장정에 올랐다. 고려인 통일 대장정단은 오는 8월 15일 광복절에 휴전선을 통과할 예정이며, 한반도의 마지막 여정을 강원도에서 보내고 동해항을 통해 연해주로 돌아갈 계획이다. 이번 유라시아 횡단 종주는 북한이 그동안 군사분계선 통과 불허 입장을 밝히면서 난항을 겪었지만 지난 5일 통과허용 방침을 러시아 외무부에 통보하면서 성사됐다.

이 소식을 듣고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누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실행에 옮겼을까. 세월호 참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비극, 말레이 항공기 격추 등으로 사람 목숨이 맥없이 스러져감에 안타까웠는데 가뭄의 단비처럼 희망을 안겨 주었다. 이 또한 어느 누군가의 작은 꿈과 그리움에서 시작되었으리라. 나도 하나의 꿈을 꾼다. 강원의 학생들과 태백산에서 출발해 설악산과 금강산을 거쳐 원산, 백두산, 두만강, 연해주, 모스크바를 거쳐 동유럽, 서유럽까지 내딛는 생각을 해본다. 자동차와 기차를 타면서.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그런데 이것이 그냥 꿈에 불과할까.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벽화에 고구려인이 등장하고, 페르시아의 유리병이 신라의 고분에서 발굴되는 것만 보더라도 우리 옛 사람들의 국제적 활동 반경과 지리적 인식능력은 무척 장대했다. 거침없이 대륙을 향해 가던 그 기상의 반에 반이라도 우리가 실천한다면 꿈으로 머무를까. 지금은 옛 사람들의 장대함은 간데없고 인천 아시안 게임에 북한 응원단이 오느냐 마느냐 하는 것으로 실랑이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폭이 좁아졌는가.

혹여 그래서인가. 갈수록 나라 안팎이 평화롭지 못하다. 힘없는 자들은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묶고, 죽은 자식을 가슴에 안고,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가고 있다. 책임, 사과, 안전, 처벌, 진실 규명 등의 낱말들은 의미와 진정성을 잃어버린 채 ‘글자’로만 덩그러니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싶어 안타깝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진실을 낱낱이 밝히겠다’,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했지만 어떤 진실이 밝혀졌는지, 누가 책임을 졌는지, 지켜보는 것만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당사자들의 아픔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고민하다 결국 ‘아이들이 희망’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드라마 정도전의 마지막 대사처럼 우리 아이들이 ‘냉소와 절망, 나태와 무기력을 혁파하고 저마다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꿀 수 있게’ 어른들의 노력이 절절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한글창제, 노예해방, 민주주의 등 역사의 수레바퀴가 앞으로 나아간 것도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때 그 누군가의 작은 꿈에서 시작되었듯, 그렇게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사회를 일궈가야 하지 않을까. 이제 도내 대부분의 학교가 방학에 들어갔다. 주5일제 전면 시행으로 방학이 많이 줄었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넉넉한 시간이다. 우리 아이들 모두 자신과 이웃을 위하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새로운 씨앗 하나 품길 기대해 본다. 그리고 방학이 지나갈 무렵 도토리 나무가 무성한 숲으로 가보길 바란다. 도토리들이 잠에서 깨어나 한 뼘 정도 자라 있을 것이고, 하늘 높이 서있는 어른 나무에 가려져 있지만 온 우주를 다 품겠다는 더 큰 꿈을 꾸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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