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신재

한림대 명예교수

강원도 산골의 봄, 해 저물녘.

마을 뒷산의 비탈밭에서 밭갈애비가 겨리소를 부려 밭을 갈고 있다. 밭갈애비는 밭을 가는 농부. 지역에 따라 ‘성군’, ‘경부꾼’이라고도 한다. 겨리소는 두 마리의 소이다. 밭갈애비는 소를 몰면서 노래를 부른다. 그는 “똑바로 가” “올라서” “돌아서” 등의 작업 지시를 노래로 전달하고 소는 그것을 다 알아듣는다. 그는 소를 위해주는 마음을 노래로 표현하기도 한다. “배가 고프면 여물 주고, 목이 마르면 물을 주마.” “오늘 갈고 내일 갈고 모레는 쉬어라.” “이거 잘 갈면은야 내 맘도 좋고 너도 좋단다.”

밭갈애비에게 소는 동물이 아니라 마음이 통하는 벗이다. “서산에 해는 지고 우리 할 일은 태산인데 어디여 도치.” “넌 쉬지 못하고 일하는 것이 내가 담배 없는 탓이로구나. 와와 어디여 돌아서라.” “너나 나나 무슨 팔자를 타고 나서 밥만 먹고 일만 하느냐. 이이에이.” ‘어디’는 똑바로 가라는 말이고, ‘도치’는 돌아서라는 말이다. ‘와와’는 서라는 말이다.

밭갈애비는 자기의 억울하고 슬픈 신세를 소에게 노래로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면 소는 그 노랫소리에 눈물을 흘리면서 밭을 갈기도 한다고 한다. 이것은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밭갈애비들의 증언이 꽤 있다. 김유정의 「봄·봄」에 데릴사위가 새고개(춘천 실레마을에 있는 고개) 맞은 봉우리 화전을 갈면서 장인에 대한 불만을 소에게 털어놓는 장면이 있다.

석양이 드리운 고즈넉한 저녁때 산기슭에서 마을에까지 들려오는, 맑으면서도 처량한 소 모는 소리는 마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부엌에서 일하던 아낙들은 일손을 놓고 그 소리에 넋을 잃었다고 한다. 강원도 산간지역을 답사하다가 가끔 듣는 할머니의 이야기. “내가 젊었을 때 저 사람의 소 모는 소리에 반해서 시집을 왔지.”

소 모는 소리는 밭갈이 현장의 여러 가지 소리들과 함께 어울릴 때 더욱 아름답다. 쟁기에 흙 넘어가는 소리, 소의 거친 숨소리, 산속 새들의 울음소리, 밭갈애비의 소 모는 소리 등의 화음은 훌륭한 봄의 교향악이다. 또한 인간과 소와 자연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는 이 장면은 훌륭한 그림이기도 하다. 나는 겨리소 밭갈이 현장을 답사할 때마다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 1897-1972)의 향토색 짙은 남종화풍의 그림을 연상하곤 했다. 소 모는 소리 현장의 예술적 경지는 경운기가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다. 기능면에서 보아도 경운기는 비탈밭을 갈지 못한다. 그러나 소는 비탈밭도 잘 간다. 어느 밭갈애비의 증언에 의하면 아슬아슬한 비탈밭을 겨리소로 갈고 있는 현장에서 서울 사람이 소가 구르기를 기다리다가 그냥 갔다고 한다.



노동이 삶에서 소외되어 있는 상황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불행하다는, 곧 오직 가족들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하는 현대인들은 불행하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그런데 소 모는 소리의 밭갈이에서는 노동과 놀이가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삶의 방법은 우리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소 모는 소리는 강원도의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소를 부려서 밭을 갈고, 논을 삶는 일은 전국 어디에서나 하지만 소를 몰면서 ‘노래다운 노래’를 부르는 곳은 강원도뿐이다. 김유정도 그의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 소 모는 소리는 강원도 고유의 노래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 강원도 인접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제주도 등지에서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반론에 대한 반론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이제는 강원도에서도 소 모는 소리가 사라져가고 있는 듯하다. 강원도 몇 군데에 소 모는 소리의 진수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놓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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