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한비자에는 ‘역린(逆鱗)’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때의 ‘린’은 비늘 린자로 ‘역린’은 ‘거꾸로 된 비늘’이란 뜻이다. 용의 목에는 정상적인 비늘과는 달리 거꾸로 된 비늘이 모여 있는데가 있는데 누군가가 그 부분을 만지면 용은 화가 나서 그 사람을 물어죽인다는 것이다. 즉 ‘역린’은 침해를 받으면 심하게 치욕을 느낄 수 있는 일종의 핸디캡을 뜻한다. 한비자가 용의 역린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말하려는 것은 개인마다 ‘역린’이 있으니 그 부분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라고 철학자 강신주는 말한다. 결국 사람의 경우 ‘역린’은 남에게 도전받거나 건드려지면 크게 굴욕을 느끼는 자존심 영역이다. 최근 손학규가 보선 후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정치가는 선거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정치 신념인 바 민심을 얻지 못한 것은 패배 이상의 충격이었음은 분명하다. 정치가로서의 그에게는 ‘민심을 잃은 것’이 ‘역린’인 셈이다.

단어 마무리 앞에 아름다움을 부치면 제대로 된 ‘비움’을 실천한 느낌이 든다. 마무리에 담겨 있는 ‘끝’ ‘회한’ 같이 쓸쓸한 감정들이 의지에 의해서 잘 정리됨은 물론 좋은 에너지로 변화 확산되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손학규가 패배의 변으로 은퇴를 택했다는 것은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길 ‘아름다운 마무리’이다. 인간의 욕구 중에 으뜸인 욕구는 남에게 인정받기를 갈망하는 마음인데, 타인의 인정과 주목이 아직도 진행형인 유명정치인이 선거에 졌다고 은퇴, 즉 내려놓음을 선택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실천이기 때문이다.

내려놓음은 본래 내 것은 하나도 없다(本來無一物)고 주장한 법정스님 정도면 가능할까 정치인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장자는 ‘집착을 버리는 일 중에서도 가장 절실한 것은 사람들이 나를 귀하게 여기거나 천하게 여기는 일 같은데 마음 쓰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손학규의 집착을 벗어던짐에 박수를 보낸다. 힘든 용단을 격려한다. 그 용단이 정치인들과 정치풍토가 변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정치가로서, 국민의 성원을 최고 가치로 삼았다는 것 자체가 손학규가 다른 정치인과 변별되는 이유이고 우리가 그의 은퇴를 서운하게 여기는 이유다.

조미현 출판기획부국장 mi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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