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바보 zone’의 차동엽 신부는 ‘바보는 계산에도 젬병이기에 바보에게 하나가 꽂히면 그것은 그의 우주가 된다’고 말한다. ∼에 꽂힌 사람들을 ‘∼바보’라 부를 수밖에 없음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좋아하는 정도의 극치를 계산 없이 좋아하는 바보의 단계와 동일하게 표현한 것이 여타의 설명이 없이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대가없이 베풀고 후회없이 열정을 쏟는 것도 그렇고 미숙하지만 맹목적으로 순수한 것도 그렇고. 바보심성은 여성보다 우직한 남성의 심성에 훨씬 더 가깝다.

세월호 사건을 보니 아버지들은 비단 딸바보만은 아니다. 여지없는 아들바보이기도 하다. 차이가 있다면 딸하고는 알콩달콩 표현을 시끄럽게 주고받는 사이이기에 관계가 도드라져 보일 뿐이고 아들하고는 서로 같은 남성이기에 뭔가 서먹해 보이고 과묵해 보일 뿐이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었던 건, 삶의 순간순간마다 소리 없이 보여주셨던 아버지의 곡진한 사랑 때문이었다’ 이철환 책 ‘눈물은 힘이 세다’ 중의 이 글귀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정체성을 정말 적절히 표현한다.

근데 아버지들의 자식사랑이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는 것을 밝혀주는 통계수치가 최근 발표되었다. 부산교육청이 초등 4학년∼중 3학년 2천여명을 조사한 결과 가정에서 대화 상대가 아버지인 학생은 100명 중 8명에 불과했다. 64%는 ‘어머니’를 꼽았다. 더구나 아버지와 대화하는 여학생은 4.5%로 6.4%인 이모나 고모보다도 뒷순위다. 아버지의 존재감이 너무나 보잘 것 없다.

우리사회에서는 아버지가 단독으로 의사결정하는 것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그리 흔한 광경은 아니다. 더더욱 사태 해결방법이 ‘대화’인 것은 아버지에게 그리 익숙지 않다. 즉 모계사회의 주도적 파워가 커질수록 아버지가 상대적으로 빈곤해질 수밖에 없고 그 빈곤함이 위상마저 상실하게 했다는 말이다. 육아방송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인기다. 아버지들이 훌륭히 육아를 해내는 것이 거의 슈퍼맨에 필적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화상대로서의 슈퍼맨 아버지도 그리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닌데 자식들이 영 기회를 주지 않는다. 아버지의 사랑은 늘 외로운 짝사랑이다.

조미현 출판기획부국장 mi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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