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정록

정치부장

지난 달 몽골에서 열린 동북아 지사성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차에 오를 때만 해도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동안 경험으로 보자면 지방정부간 교류는 내용보다는 명분 중심이어서 말의 성찬으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몽골 튜브도를 제외하면 중국 길림성이나 러시아 연해주, 일본 돗토리현 모두 외곽의 대표적인 낙후지역들이다. 굳이 이들을 동질화하자면 정부로부터의 소외감을 깊이 새기고 있는 지역 정도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막상 현장을 보니 분위기는 달랐다. 러시아 연해주나 중국 길림성, 몽골의 튜브도가 추진 중인 프로젝트들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중국 길림성은 창춘-지린-투먼을 잇는 이른바 ‘장지투 개발사업’을 통해 SOC와 기업투자 유치에 발벗고 나선 상태다. 러시아 연해주는 APEC 정상회의 이후 100억 달러가 넘는 지역 투자계획을 선보였다. 몽골 튜브도는 신공항 건설과 유럽행 철도 건설, 관세면제와 같은 기업유인책을 제시했다.

20여년 전 국제교류 초기만 해도 이들 지역은 국가의 변방이자 개발의 소외지역이었다. 그러나 몇 년 사이에 중국이나 러시아가 대양으로 향하는 새로운 출구로 이들 지역을 재조명하고 본격적인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오히려 국제교류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강원도와 일본 돗토리현만 딱히 할 말 없이 머쓱하게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강원도가 이 기나긴 시간을 손놓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겨울올림픽 유치와 원주~강릉철도 건설과 같은 큰 일도 많았다. 그러나 막상 겨울올림픽을 손에 쥐고 보니 동북아를 함께 공유하는 다른 지방정부의 기세에 비해 너무 초라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다른 무엇보다 정부 정책의 밑그림과 강원도의 연결고리가 대단히 취약해진 현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그것은 강원도 정책이나 비전의 보편성과도 같은 것이다. 정책의 보편성은 누구나 수긍하고 동의할 수 있는 일종의 당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물론 그 보편성은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기보다는 종종 권력 내부로부터 강요된 경우도 많다. 그러나 강원도처럼 정치역량이 한계상황에 놓여 있는 지역은 치밀한 전략과 정책의 설득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강원도가 대외적인 보편성을 잃어버리는 동안 내부적으로는 혹시 이솝우화의 ‘신포도론’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남들이 이뤄놓은 성취조차 “저 포도는 신포도일거야”라고 애써 자위해 오는 동안 외부와의 격차는 그만큼 벌어진 것 아닌가라는 반성같은 것 말이다. 곱씹어보면 강원도의 정치성향 중 대표적인 것이 이 신포도론이다.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 삼키는 강원도의 투표성향은 가끔 강원도 바깥세상을 깜짝 놀라게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현실세계에서 피동적인 수줍음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결국 강원도의 과제는 우리의 현실과 비전을 어떻게 설득력있게 준비하고 이를 확장시켜 나갈 것인가로 요약할 수 있다. 겨울올림픽이든 레고랜드, 오색케이블카, 동해안 항만개발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흔히 보수는 거짓말을 사람에게 하고, 진보는 맞는 말을 사물에게 한다고 하지만 현 민선 도지사 체제에서 굳이 진보, 보수 따지며 귀를 닫고 벽을 밀고 나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다. 정파 간 이해를 떠나 강원도 현실을 직시하고 역량화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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