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 東 烈(영동본부 취재부장)

 대관령이 '오랜만에'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들은 아흔아홉굽이 고갯길이 연출해내는 절정의 가을 단풍에 취해 대관령에 깃든 추억을 되새기고, 대관령의 무게와 가치를 새삼 절감했다.
 지난달 27일 강릉시가 처음으로 마련한 '대관령 단풍 걷기' 에는 모두 2천여명의 시민 관광객이 참가해 그렇게 대관령을 걸어 넘었다.
 신설도로가 뚫린 뒤에도 고향을 찾아올때는 거의 매번 이 고갯길을 택한다는 한 재경 인사는 "역시 이길이야말로 된장 뚝배기 맛처럼 넘으면 넘을수록 정감이 넘치는 대굴령(대관령)"이라고 예찬론을 펴기도 했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동장군의 서슬에도 불구, 2천여명이 그렇게 단풍에 취해 추억을 더듬은 대관령 옛길(舊고속도로)은 지난해 11월말 신설 고속도로가 개통된뒤 통행량이 급감,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도로다.
 동∼서의 관문 답게 하루 2만∼3만대가 보통이었던 통행 차량이 하루 아침에 최고 20분의 1까지 급감, 신설 도로 개통 초기인 지난해 겨울 눈이라도 내리는 날에는 대관령 옛길은 정말 차 구경하기가 힘든 곳으로 변했다. 성산면 어흘리의 한 주민은 “밤에는 마치 산사(山寺)에 들어온 것 같았다”고 그 적막감을 충격적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파나마 운하가 개통된뒤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도 그랬을까.
 지구 반대편, 남미 대륙 칠레의 남단 도시 푼타 아레나스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마젤란 해협의 길목에 위치, 역사상 어느 도시보다 심한 부침을 겪었다.
 1520년 마젤란 선단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안전하게 넘나드는 새 항로를 발견하면서 그 길목 땅끝 마을 푼타 아레나스는 이후 지구상에 둘도없는 목 좋은 곳에서 원행(遠行) 선단의 안식처 역할을 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번성했다.
 그러나 1914년 파나마 운하가 뚫리면서 푼타 아레나스는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했다. 대관령 舊도로 처럼, 파나마 운하라는 지름길이 중미 대륙의 좁은 허리를 잘라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에 81㎞밖에 안되는 인공(人工) 뱃길을 열면서 푼타 아레나스는 대 선단의 발길이 뚝 끊겼다.
 먼길을 돌아갈 필요가 없어진 배들은 더 이상 푼타아레나스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 도시는 서서히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져갔다.
 그렇게 끝났을까. 그러나 푼타 아레나스는 지금도 그곳에 건재하다.
 駐 칠레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푼타 아레나스는 지금 칠레 제12지역의 주도(州都)로, 남극으로 드나드는 민간 여객기의 길목으로, 또 주변에 천혜의 자연 공원을 거느린 인구 11만5천명의 관광도시로 거듭났다.
 푼타 아레나스의 그같은 부활을 보여주려는 것인가.
 지난 8월말 재경 강릉시민들이 고향 방문을 하면서 굳이 걸어 넘기를 자처했던 그 고갯길에 이번에는 이른 추위에도 불구하고 2천여명의 인파가 몰려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했다. 그들은 더 이상 교통체증에 짜증낼 필요가 없는, 여유와 운치를 즐길 수 있는, 말 그대로 '대관령 2배 즐기기'의 주인공들이 됐다.
 더 나아가 최근 강릉지역에서는 전망 타워와 산림 휴양·먹거리 등 대관령의 관광문화적 가치를 제고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성화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
 때마침 대관령 정상 용평이 동계 올림픽 개최도시 후보에 올라있다. 최종 개최지로 확정되고 지구촌 최대의 축제가 2010년 대관령의 설원을 수놓게 된다면, 그때쯤 추억의 대관령도 푼타아레나스 처럼 다시 서 있을 것이라고 믿고싶다. dychoi@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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