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규

한국분권아카데미 원장

사회가 침몰하고 있다. 세월호와 윤일병사건이 우리 사회의 정체성과 본질에 크나 큰 충격과 혼란을 가속시키고 있다. ‘우리와 우리 사회는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하게 된다. 국민 대다수의 아픔을 ‘집단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우리는 5·18과 광우병사건과 같은 국민적 트라우마로 말미암은 ‘집단기억’의 악몽이 남아 있는데 세월호와 윤일병사건은 또 다른 ‘집단기억’의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집단기억의 피해는 상처와 후유증이 오래가고 회복하기 힘들다는데 문제가 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신뢰수준을 수면바닥으로 침몰시켰으며, 윤일병 사건은 군대와 같은 공적영역의 신뢰도를 사망시킨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와 우리 사회에게 소중한 것은 신뢰감, 배려, 협동과 같은 사회적 가치들이다. 그러나 세월호와 윤일병사건은 이러한 소중한 자원들을 한방에 무너트리고 우리들을 뼈아픈 ‘집단기억’의 트라우마로 빠트리게 한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어디인가? 이 사회가 나갈 방향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뢰사회다. 선진국은 고신뢰국가이고 후진국은 저신뢰국가다. 우리의 목적과 방향인 신뢰란 무엇인가? 세 가지로 요약하고자 한다.

첫째, 신뢰는 자본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을 중심으로 생산이 이루어지고 소유관계가 결정이 되는 사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금전적 자본도 중요하지만 신뢰와 같은 사회적 자본도 매우 중요하다. 모든 관계와 거래에는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이 발생되는데 선진국은 거래비용이 고신뢰구조로 말미암아 적은 사회를 말한다. 신뢰 수준이 높으면 시간과 비용이 절약되고 협동으로 인한 시너지가 발생되고 투명성으로 인해서 경제적으로 긍정적 효과가 발생된다. 신뢰가 돈이다. 신뢰 자체가 크레딧이기 때문에 신뢰는 선진 사회로 가기 위한 본질적 자원이다. 세월호와 함께 침수된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둘째, 신뢰는 원칙(principle)이다. 사회에서 거짓말은 비원칙이고 참말이 원칙이듯이. 신뢰는 그 자체가 원칙, 규칙, 근본 그리고 질서다. 최근에 1200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신뢰조사를 하였는데 80%의 대학생들이 ‘한국사회를 신뢰할 수 없다’고 답했다. 우리는 무/비원칙과 몰/비상식이 원칙과 상식을 대신하는 사회질병에 걸린 듯하다. 리더가 원칙대로 하면 리더가 바뀌어도 큰 혼란이 발생하지 않는다. 정치인이 원칙대로 정치력을 행사한다면 정치인의 색깔(좌우)은 별 문제가 될 수 없다. 공권력이란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폭력’이 허용되는 유일한 조직이다. 그러나 작금의 공권력과 정치권과 공적영역은 낮은 신뢰감으로 인하여 공적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든 상태다. 무신불립 즉 신뢰가 없으면 설 수 없다. 신뢰회복 특히 정치권과 공적 영역의 신뢰회복은 무조건 이루어져야 한다. 윤일병과 함께 사망한 신뢰의 원칙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

셋째, 신뢰는 힘이다. 힘은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기본적인 요소다. 경쟁력, 무력, 실력, 능력 등 우리에게는 힘이 필요하다. 힘이 없으면 모든 존재들은 존재하기 힘들 듯이. 이제 선진사회로 진입하려는 우리들에게는 신뢰라는 힘이 필요하다. 선진국을 가보면 보이지 않는 힘들을 발견하게 한다. 그것은 신뢰의 힘이다. 그 신뢰의 힘으로 복지사회와 자유경제 민주사회가 유지되는 것이다. 후진국의 길거리에서 신뢰를 만나기는 어렵지만 선진국의 길거리에서는 신뢰의 힘을 느끼게 된다. 길거리의 간단한 교통질서가 유지되는 선진사회는 보이지 않는 신뢰의 손이 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자유/민주/복지 선진사회란 구성원간의 신뢰를 원칙으로 그리고 신뢰의 힘으로 작동되는 사회다. 세월호로 무력화된 우리 사회의 신뢰의 힘을 어떻게 다시 소생시킬 것인가?

신뢰는 자본이고 원칙이고 힘이다. 신뢰의 회복 없이 우리와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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