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남겨 놓고 간 것이 있어서 다행이다’는 강영권 검사라는 분이 세상을 떠나자 지인들이 그의 글을 모아 책을 펴내면서 서문 첫 귀절에 쓴 문장이다. ‘난초가 깊은 산 속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여 향기롭지 않은 것이 아니다’라고 한 공자의 말처럼 뭔가 족적을 남기지 않아도 열심히 살다 간 사람들은 삶 그 자체가 향기나는 흔적일 수 있다. 우리같은 장삼이사들은 남길 것이 없는 것을 그리 자책할 필요도, 이유도 딱히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자신이 사람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줄 수 있는 재능 또는 영향력을 가졌다면 남길 수 있는 뭔가를 위해 애쓰는 것이 마땅하다. 하긴 천부적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의 경우 그들의 실력 노력 열정이 합쳐지면 의도를 하지 않아도 남겨질 수밖에 없는 걸작품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태백의 ‘하늘이 필히 쓸 곳이 있어서 나를 낳았다’라는 말 ‘천생아제필유용(天生我在必有用)’이 있다. 이 말은 자신이 최고 잘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필히 쓸 곳’으로 삼아 그를 평생 업으로 하면 최대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음은 물론 언제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음을 뜻한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이름이 박힌 작품으로 죽은 후에도 칭송을 받는 작가 예술가 학자 등은 최고의 적성을 잘 찾아 명예는 물론 사랑까지 얻게 된 복 있는 사람들이다.

고 최인호 작가도 이런 축복받은 사람 중의 하나다. ‘별들의 고향’ ‘상도’ ‘잃어버린 왕국’ 등 수많은 명작을 쓸 수 있는 큰 재능을 받았음에 감사하고 그 재능을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작가가 된 것에 감사해야 할 사람이라는 말이다. 작년 9월 타계한 최인호 작가의 1주년 추모전이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열린다. ‘최인호의 눈물’이라는 이 전시회는 최 작가의 아내가 준비했다. 고 최인호 작가는 ‘아내는 내게 있어 함께 수레를 타고 인생의 시가행진을 벌이는 동반자이다’라고 묘사한다. 추모 l주년을 전시회로 마련하여 뭇 사람들과 감성을 공유하는 아내나 그렇게 해 줄 수 있게 탁월한 업적을 남긴 최 작가나 훌륭한 아내이고 남편이다. 최인호 작가에게 오롯이 빠져들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뭉클한 따뜻함을 선사할 것이다.

조미현 출판기획부국장 mi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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