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종인

사회부장

접경지역을 포함하고 있는 강원도내에는 15만명이 넘는 군장병과 간부들이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강원도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인구다. 이렇게 많은 군인들이 있다보니 지역사회와는 뗄레야 뗄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이때문에 도민들은 군부대에서 발생하는 사고나 사건에 민감하다. 특히 경제활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접경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의 생존과도 직결돼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군부대의 일거수 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6월 고성에서 발생한 임병장 총기 난사사건이나 28사단 ‘윤일병 구타사망사건’ 같은 불상사가 발생하면 접경지역 주민들의 우려는 상상을 초월한다.사건이 발생하면 당장 군부대에 외출·외박이 통제되는데 이는 곧바로 지역의 상경기를 얼어붙게 만들기 때문이다.예전부터 부대 주변에 구전처럼 떠돌던 군부대의 총기사고와 가혹행위 등의 불상사는 선임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신병을 괴롭히고 구타하고 기합주는 가혹행위를 남성성을 강조하는 미화로 둔갑, 유야무야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인권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20~30년전 군대는 병영폭력을 당연시했다. 담배한대 나눠 피우며 폭력의 당위성을 미화시키기도 했지만 피해자에게는 악몽이었고, 트라우마가 됐다. 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아예 없거나 있어도 솜방망이 수준에 불과했다.

최근에는 가혹행위에 성추행까지 갈수록 높은 수위의 범죄가 발생하고 있고 이러한 사고는 부대 안팎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병사들끼리 나가 술을 먹고 동료 사병을 성추행하는가 하면, 후임 병사의 성기를 만지거나 손으로 툭툭치는 성추행이 다반사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휴가 나온 병사나 간부가 민간 여성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아 지역사회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성추행에 대해 남성들만의 세계에서 흔히 있는 장난 정도로 치부됐지만 이제는 엄연한 성추행으로 처벌받는데도 군인들의 인식은 여전히 70~80년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불상사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윤일병 구타사망사건’이다. 윤일병 구타사망사건은 군부대의 병사관리 부실이 얼마나 허술하고 형식적인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군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하자 국방부는 군부대의 병폐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달 6일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병영문화를 바꾸겠다고 다짐하고 나섰다.

9월을 ‘열린 병영문화 시작의 달’로 선포한 국방부는 일반 부대 병사들의 평일 면회, 최전방 GOP(일반전초) 근무 장병 휴일 면회, 공용 휴대전화 지급, SNS활용 등 4가지 혁신안을 연내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병영혁신 대책이 ‘보여주기’가 아닌 ‘제대로만’ 실행되면 병사들의 생활뿐만 아니라 지역에도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그동안 군이 대책을 몰라 개선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회의 변화상을 쫓아가지 못하고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고집에서 비롯됐다.보여주기 식의 이벤트보다 군장병들의 인권을 어떻게 보장해 줄 것인가를 더 고민해야 한다.

자율적 문화와 개성을 중시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을 군이라는 울타리에서 획일적으로 통제하다보면 사고는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사회의 변화만큼 장병의 인식도 크게 달라졌는데도 병영문화는 이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다. 군 스스로 변화하는데 한계가 있다면 외부의 의견을 수렴해 병영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군의 기본적인 사고와 문화를 바꾸지 않는 한 ‘강한 군대’는커녕 지역과도 상생할 수 없는 군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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