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뉴미디어 부장

검찰이 지난달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신설하는 등 사이버 공간에 대한 사이버 검열 논란이 일면서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 이용자들이 대화 내용의 해독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외국계 메신저인 텔레그램(Telegram)으로 갈아타는 이른바 ‘사이버 망명’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카카오톡이 독점하다시피 한 국내에서 그저 수많은 외국산 메신저 중의 하나인 텔레그램은 러시아 당국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파벨 두로프가 지난해 보안성을 최우선으로 개발한 메신저 프로그램이다.

사이버 검열 논란이 일면서 100위권을 맴돌던 텔레그램은 국내 애플 앱스토어 무료 카테고리다운로드 순위에서 카카오톡을 제치고 1위를 달리기 시작했으며, 현재 국내 텔레그램 이용자는 최근 260만명을 넘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국내 사이버 이용자가 국내 관련법 적용을 피하기 위해 서버를 외국에 둔 서비스로 이전하는 사이버 망명 현상은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다. 인터넷 실명제 도입 직후 국내 포털 이용자 일부가 구글로 피난을 갔었고 판도라와 아프리카TV 역시 유튜브로 망명간 사례가 있는데 이것은 인터넷 규제 영향이 컸다고 전문가들이 밝히고 있다. 모바일 업계에서도 텔레그램으로의 사이버 망명 현상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과거 인터넷 실명제 실시 이후 국내 인터넷 업체가 몰락했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인터넷 실명제가 시행되면서 국산 SNS가 대거 몰락했고 대신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외산 SNS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트온과 싸이월드 등 인터넷 서비스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던 업체들이 지금은 시장에서 퇴출됐거나 퇴출 위기에 처해 있고 사이버 망명으로 이용자가 떠나버린다면 다음카카오 역시 그 전철을 밟아 기업가치가 한순간에 휴지 조각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사이버 망명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되자 위기감을 느낀 다음카카오는 사과문과 함께 상대방과의 송·수신 메시지가 저장되지 않는 ‘프라이버시 모드’를 올해 안에 배포하기로 발표했다.

또한 현재 진행 중인 국감에서도 다음카카오에 대한 검찰의 실시간 감청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대표 토종 인터넷 기업으로 성장한 다음카카오가 검열이라는 족쇄로 인해 외국 SNS업체에게 또다시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이다. 당장 텔레그램의 다운로드 급증이 국내 모바일 메신저 가입자의 탈퇴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지만, 일부 업계에서는 앞으로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텔레그램이 당장 카카오톡의 아성을 넘기는 쉽지 않겠지만 텔레그램 이용자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상당한 파괴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몇 년 전 국회 입법조사처가 국회의원들의 의뢰를 받아 조사한 결과에서도 인터넷실명제를 비롯한 통신비밀보호법,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의 규제가 검색과 이메일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국내 인터넷 포털업체에 큰 타격을 줄 우려가 있다고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검찰의 사이버 검열에 대한 이유야 어떻게 됐든 국내 토종 메신저 서비스인 카카오톡이 곤란을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의 인터넷 망이나 SNS를 이용하는 사용자들의 불안을 증폭시킴으로써 외국 기업들만 이익을 보게 된 셈이 됐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검찰과 정부 당국의 사이버검열 분위기로 사이버공간에서 정보주권(情報主權)까지 뺏기는 초유의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번 사이버 망명 현상이 단순 해프닝으로 끝날지 태풍을 몰고 올 나비효가가 될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초고속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이며 IT강국으로서의 위상이 내부규제로 인해 무너지지 않게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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