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행동을 했을 때 칭찬이나 상을 주고 나쁜 행동시 벌을 주는 것으로 동물을 훈련시키면 대부분 전자 즉 칭찬이 행동을 변화시키는데 효과가 있다고 심리학자 스키너는 말한다. 그는 이 실험을 가지고 인간을 교육시키는데도 칭찬이나 격려같은 긍정적 메시지가 좋은 교육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말은 긍정적 강화가 더 효율적이라는 말이지 벌이 나쁜 행동을 수정하는데 효과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벌을 줄 일 없이 칭찬만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교육환경만 존재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어떤 이상적 환경이라고 자부하는 곳에서도 그는 쉽지 않다. 부모나 교사들이 자녀들에게 벌을 준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억제하거나 교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이들에게 책임감을 가르치기 위한 비책이다. 물론 벌을 주는 사람의 개인적 감정이 개입되어서 그 명분이나 강도가 정당하지 못했을 때 아이들이 받을 상처가 걱정 안 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단지 그 이유로 벌의 교육적 효과까지 무시한다는 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것과 같은 일일 수 있다.

성경 잠언은 ‘매와 꾸지람은 지혜를 얻게 만들어 주지만 내버려 둔 자식은 그 어미를 욕되게 한다’고 말한다. 율곡의 ‘학교모범’은 학생을 가르치는 방법을 16개의 규범으로 조목조목 설명한다. 그 책은 ‘16개 규범을 잘 지키는 사람은 이름을 기록하여 학장에게 알려 권장하고 행동이 나쁜 학생은 꾸짖어 깨우치게 하는데 그래도 고치지 않으면 퇴학시킨다’고 말한다. 500여년 전 교육현장에서도 상과 벌이 필히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귀절이다.

도교육청이 체벌을 근절하면서 만든 ‘상·벌점제’에서 벌점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벌을 말로 타이르거나 상담으로 대체하자는 것인데 문제는 실효성이다. 아이들이 비행을 고치도록 해 주어야 하는 것은 어른 몫이다. 어떤 교육방법이 더 적절한지는 환경에 따라 비행학생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때문에 교사들에게 벌점제든 상담이든 생활지도 전권을 주는 것이 마땅하다. 절제지심이 필요한 연령대의 아이들은 특정행동을 중단시키거나 변화하게 하는 ‘벌’을 통하여 적정선의 한계를 인식한다.

조미현 기회출판부 국장 mi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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