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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의 反問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2002년 11월 11일 월요일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 왔다. '북핵(北核)과 귀환 일본인' 문제가 터진 미묘한 시기의 방일(訪日)이어서 이국적 풍광에 취하기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일본 신문과 일본 티브이를 들여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제39회 한일 편집 세미나는 본 궤도를 조금씩 이탈해 가기 시작했다. 원래 세미나 주제는 '한일 월드컵 이후의 한일 관계'였는데, 일본은 이를 조금 비틀어 '한일 월드컵 이후의 한일 관계와 동북아 정세'로 몰고 갔다. 이로 말미암아 한일 언론인들의 담론은 문화에서 대번에 정치로 튀는 긴장감을 갖게 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언론인들이라 이런 정도의 벗어남은 오히려 시사(時事)에 민감하다는 측면에서 당연한 것일 수 있었다. 문제는 일본 세미나에 참석한 일본 언론인들의 시각이었다. 한국측 발제자가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이후 한국엔 신민족주의가 싹트기 시작했다"고 할 때 그들은 거의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며 질문을 해댔던 것이다. "자세히 설명해 달라. 그렇다면 당신들이 말하는 신민족주의란 무엇인가?" 한국 언론인 몇 분이 이런 저런 설명을 풀어 놓았지만 일본 언론인은 개운치 않은 표정들이었다.
 그들의 우리에 대한 그 오랜 사시(斜視)를 참아내지 못하고 급기야 다음과 같이 토론한 필자야말로 지독한 민족주의자인가? "일본 언론인들이여, 들어 보라." 이렇게 허두를 꺼낸 필자는 그 순간 꿀꺽 침을 한번 삼켰다. 최근의 미국을 살펴 보자, '위클리 스탠더드'라는 주간지의 편집장 윌리엄 크리스톨을 주시해 보자, 그의 아류인 존스홉킨스대의 앨리어트 코헨 교수에게도 눈을 주라, 그렇다, 언론인을 더욱 주목하라, '뉴욕 타임즈''워싱턴 포스트''타임''뉴스 위크'의 이름난 평론가 윌리엄 사피르, 조지 윌, 찰스 크로커머, 이들 역시 크리스톨 옆에 서 있다. 이들은 모두 미국의 대외 정책 기조가 지금처럼 신보수주의로 뒤바뀌는 데 입김을 작용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이데올로기의 장사꾼들이다, 역사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아프간이든 이라크이든 사우디아라비아든 유엔이든 그리고 북한 또는 일본이든 이들은 미국이 과거의 유연한 습관과 단절할 것을 요구한다, 한 마디로 지금 미국의 신보수 이데올로기 그룹이 미국이 벌이려는 모든 전쟁을 도덕률에 인도되는 신의 섭리라고 주장한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북한과 수교하려는 것에 대한 미국의 불만의 근원지도 이들이다, 다민족주의의 나라에 사는 이들의 애국주의야말로 단일 민족국가인 일본과 한국이 얘기하는 그 민족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미국의 이 완강함이 겁나지 아니한가?
 이런 형국에 한국의 신민족주의가 의심스럽다고? 축구 승리에 취한 한국의 신민족주의란 무엇인가라고? 그것은 민족주의의 해체일 따름이다, 네오든 글로벌이든 오프닝이든 그것은 심화나 강화가 아니라 자신감에 기반한 민족주의의 약화일 뿐이다, 일본 언론인들이여, 왕년의 반일 저항 의식을 떠올리며 한국의 신민족주의에 의구심을 가질 것 없도다, 따라서 나는 오히려 묻는다, 그대들의 민족주의야말로 의심스럽지 아니한가?
 시시때때로 독도를 넘보고, 때에 따라 동해의 이름을 바꾸고, 교과서에 역사를 왜곡하고, 기회 닿는 대로 한인 징용과 정신대를 모른다 하며, '통석의 염' 이후 진전된 사과가 없을 뿐 아니라, 패전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끊임 없이, 특히 선거 때마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뒤 유권자 앞에서 보수 우향의 강도 높은 발언을 누가 더 많이 더 심하게 하느냐를 경쟁하는 당신들의 그 민족주의야 말로 쇼비니즘이다, 나아가 제국주의적 음습한 냄새를 피우고 있지 아니한가, 누가 누구의 신민족주의를 의심하는가? 따라서 반문한다, 당신들의 민족주의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물은 질문을 당신들 자신에게 던져야 한다고 생각지 않으신가?
 말을 마쳤을 때 일순 천하는 침묵했다. 세미나가 끝나자 '요미우리' '도쿄' '아사이' '마이니치' '니혼' '산케이' '교도' 신문들의 논설위원과 외신부장들, 일본방송협회와 후지 텔레비전의 국제부장과 정치부장이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들의 눈은 늘 그렇듯 의심에 차 있었지만 반론은 나오지 않았다. 도쿄를 떠나 도착한 제주도와 비슷한 경관의 가고시마(鹿兒島)의 밤은 그리하여 얼마나 의미심장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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