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성숙

도 문화예술특보

말띠해 갑오년도 이제 한달 남짓 남았습니다. 그 어느 한해도 다사다난하지 않았던 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올 2014년은 비극적인 엄청난 일이 일어나 온 국민을 우울의 늪에서 허덕이게 했습니다.

세계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며 물질적 풍요 속에 안전 불감증에 걸린 대한민국에 ‘세월호’라는 가슴 저미어 오는 슬픔을 통해 우리 자신을 뒤돌아 보는 자성의 나날이었습니다.

경제성장률의 중심지표로 삼고있는 국내총생산(GDP)이 높다고 해서 국민행복지수(GNH)도 동반 상승하는 것은 아닙니다. 연세가 높으신 어르신들께서는 60~70년대는 먹고 살기는 힘들었어도 이웃간에 인정이 넘치고 사람 사는 냄새가 풋풋하게 풍기는 정겨운 세상이었다고 회상합니다.

물질적으로는 차고 넘치는 세상인데 왜 세상은 갈수록 삭막하고 무서운 세상으로 변해가는지 안타깝습니다. 여러 가지 원인과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한가지는 정서적으로 메말라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젠,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을 수 있는 진정한 우리의 문화예술을 계승발전 시켜야 국민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음을 감히 단언합니다. 우리의 행복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감이 아닙니다. 웅장하고 거창한 문화예술이 아니더라도 전통적인 우리 고유의 문화예술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켜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행복지수는 높아질 것입니다.

최문순 도지사로부터 문화예술특별보좌관으로 위촉 받은지 100일을 훌쩍 넘겼습니다. 문화예술특보라는 자리가 새롭게 탄생된 자리어서 그만큼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끼며 조심조심 살얼음을 걷듯 지내온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동안 느꼈던 문화예술의 환상적인 트라이앵글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트라이앵글은 삼각형이 주는 안정감도 있지만 그 울림도 매우 아름답습니다. 문화예술을 발전시키고 향유할 수 있는 트라이앵글은 문화예술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과 전문 예술가, 생활 예술가라는 삼각이 서로 잘 어울려야 가능합니다. 그 어느 하나가 더 크고 길거나 반대로 짧다면 아름다운 소리와 안정적인 트라이앵글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강원도의 문화예술 현장은 행정력이 주도해서 이끌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공공재원이 투입되어야하는 대한민국의 문화예술 현실에서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문화예술은 매우 가치지향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관 주도아래 목적의식에 집중하는 경향이 팽배하고 성과주의 내지는 전시본능주의를 뛰어 넘기가 무척 힘들어 보입니다. 따라서 관이 주도하기보다는 문화예술에 대한 행정지원과 지역 내 다양한 예술 인적자원의 네트워크를 연결해 주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문예술가가 주도해서 문화예술을 발전시키는 것도 한계는 있습니다. 대부분의 전문예술가들은 예총이나 민예총에 소속이 되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지역의 문화예술행사를 서로 사이좋게 나누어서 행사를 위한 행사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중에 독립적으로 홀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은 그들만의 외로운 독백으로 예술 행위를 하기가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그에 비해 생활예술은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의 시간과 노력, 비용을 들여서 문화예술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즉 이제는 주민들이 관객의 대상이 아니라 예술행위의 주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주민자치센터와 기초단체가 운영하는 여성문화회관, 지역 문화원 등에서 동아리로 출발한 생활 예술가들은 그 지역의 강력한 문화예술의 에너지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관이나 단체가 주도하지 말고 지역주민의 지지와 동의를 얻어내어야 할 때입니다. 즉 관이 하나의 축이 되고 전문예술가의 깊은 예술성과 안목이 하나의 축이 되어야 하며 생활 예술가들의 참신성이 나머지 한 축이 되어 서로 격려하며 함께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강원도의 문화예술이 한정된 지역을 넘어 하나의 큰 틀로 발전하리라고 기대합니다. 그러할 때, 강원도민 모두가 추구하는 2018동계올림픽을 문화올림픽으로 멋지게 치러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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