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년회가 이어지고 자주 못 만나고 있던 사람들이 안부를 전해오고, 교수신문이 뽑은 올해의 한자 ‘지록위마(指鹿爲馬)’가 발표된 것을 보니 ‘벌써’ 한 해의 끝자락이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벌써’라는 단어에 가속도가 붙었는지 눈 깜짝 할 사이에 만나게 되는 ‘벌써’이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자본금이기에 이 자본금을 잘 이용해야만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는 성인의 말씀도 있지만 이맘때 느껴지는 기분은 해마다 비슷하다. 큰일 없이 무탈한 가족들 그리고 직장 정말 감사했지만 그저 그렇게 살아왔을 뿐 뿌듯할 정도로 잘 산 것 같지는 않다는 자성이 바로 그 기분의 본체다. 허하고 쓸쓸한 감정이 잦아지는 것이 나이 먹어가는 일이다.

마지막 남은 2014년의 시간들 무엇으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까 진심어린 고뇌를 해 본다. ‘행복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다’라는 말처럼 행복할 수 있는 일 잘 선택해 실천한다면 지는 시간 앞에 조금은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말이다. 법정 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라고 말한다. 한 해의 끝에서 아무리 소소한 것일지라도 마음 속 껄끄러웠던 짐 다 내려놓는 용기, 즉 용서를 하거나 구하거나를 실천해 보면 어떨까? 용서나 사과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일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지 결코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불가의 임제선사어록에는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리하면 자신이 서 있는 자리마다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리라’ 한다.

EBS에서는 엉클어진 관계를 복원하는 프로로 ‘용서’를 방영한다. 심한 갈등 속에 있던 사람들이 며칠 동안 함께 오지를 여행하면서 대화를 통해 서로 화해하고 이해하게 되는 프로다.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은 골이 깊은 원한이 결국에는 포용하는 관계로 변화를 보이는 것을 보면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용서하는 마음 만큼 귀한 것은 없어 보인다. 진정한 용서는 내면의 성숙함을 확인해 볼 수 있음은 물론, 타인을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기쁨을 선물한다. 연말에 실천하기에는 아주 제격인 화두다.

조미현 기획출판부 국장 mi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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