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희

도교육감

새해가 밝고 한 달이 채 안 되었는데, 네 번의 일정을 대관령 너머에서 치렀다. 솔향 가득한 강릉에 들를 때면 짬을 내 경포나 안목의 바닷가로 나갔다. 내가 선 곳에서 뭍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었다. 여기서 묵은 해가 지고 새로운 해가 떠올랐다. 춘천의 바람과는 결이 다른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로 유명한 폴 발레리의 같은 시에 나오는 “바다,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바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늘 다시 시작하는 새해를 예순 번 이상 맞고 보냈는데, 동해의 물결처럼 싱싱하게 생동하는 삶을 살았나 돌아보았다. 이런저런 아쉬움도 있지만, 연말에 통기타를 다시 꺼내 든 일은 참 잘했다는 생각이다. 빡빡한 일정도 일정이지만 오랫동안 손을 놓았던 일을 다시 배운다는 것이 마냥 즐겁고 쉽지는 않다. 손가락끝이 아프고 눈이 침침해서 악보도 자주 뒤섞여 보인다. 그래도 틈날 때마다 기타를 안고 줄을 튕긴다.

대학 다닐 때나 초임 교사 시절에는 기타를 꽤 가까이했다. 그래서 초보자들이 선택하는 70~80년대의 노래 몇 개는 얼추 비슷하게 연주하고, 제법 노래까지 얹어 부를 수 있다. 기타 연주의 매력 중 하나는 완성이 없다는 것이다. 연습하던 것이 어느 정도 만족스러우면 금세 새 욕심이 생긴다. 이내 실패감을 느낄 때가 많지만 두렵지는 않다. 오히려 실패가 도전하는 마음을 키운다. 도전하는 자세, 이는 젊은이나 아이들한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때로는 사유의 실마리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기타소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기타 줄에서 오는 듯 싶지만 가만히 놓아둔 기타 줄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줄을 뜯거나 튕기는 내 손가락에서 오는가 싶지만 기타를 저만치 놓아두고 손가락을 움직여 본들 소리가 날 리 없다. 과연 기타소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렇게 부풀어진 생각은 이내 ‘사이’에 대한 명상으로 이어졌다. ‘사이’는 이것과 저것의 어느 한 편에 서지 않으면서 어느 한 편을 버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속 편한 중간이나 산술적 평균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좋은 생각은 이것과 저것의 사이, 편향되지 아니한 자리에서 떠오른다. 좋은 화음은 기타 줄과 손가락 사이 어디에서 나온다. 좋은 교육은 이것과 저것의 교감과 공감에서 생성된다.

학교나 기관을 다녀보면 ‘교학상장(敎學相長)’이 씌어진 액자를 걸어놓은 데가 많다. 이를 ‘교사는 잘 가르치고 학생은 잘 배워 서로 성장한다’고 풀이하는가 보다. 크게 나무랄 일은 아니겠지만, “배운 다음에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가르친 다음에야 어려움을 알게 된다”는 원문에 기대본다면 ‘상(相)’의 ‘서로’는 교사와 학생보다는 배움과 가르침의 관계로 보는 것이 맞을 테다. 배움에 충실해 가르치고, 가르치며 배움의 열정을 키워갈 때 배움도 가르침도 함께 성장한다는 풀이가 자연스럽다.

새해에는 강원도의 모든 학교가 전문학습공동체를 구성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해 볼 것을 각급 학교에 알렸다. 정책 지원 또한 확대할 계획이다. 매주 수요일 방과후, 모든 선생님들이 전문학습공동체 활동에 참여해서 강원교육의 새 문화를 터 가주기 바란다. 없던 걸 새로 만든 건 아니다. 혁신적으로, 제대로 해보자는 것이다. 도달해야 할 어떤 목표나 상태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각급 또는 개별 학교마다 저마다 생기롭게 교육적 상상력을 발휘해 운영해 주길 당부한다. 내가 요즘 기타를 배우며 느끼듯,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도전 그 자체의 짜릿함을 느껴보았으면 한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했다. 이에 바탕을 두고 나는 ‘가르침의 질은 배움의 질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명제를 제안한다. 잘 배워야 잘 가르칠 수 있다. 좋은 교사는 능숙하게 배우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나도 기타를 더 열심히 배워, 선생님들의 전문학습공동체를 찾아가 연주해 줄 계획에 벌써 가슴이 설렌다.

올해는 양띠 중에서도 진취성이 도드라진 청양(靑羊)의 해란다. 푸른 양떼처럼 몰려오는 동해의 물결을 보며, 강원교육 구성원 모두가 늘 다시 시작하는 바다처럼, 저 파도처럼 전문학습공동체에서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더욱 새로워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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