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섭

경제부장

3월11일은 강원도내 101개 농협과 축협, 수협, 인삼협, 양돈협, 산림조합의 장(長)을 뽑는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 선거일이다. 그동안 조합별로 조합장 선거가 치러지는데다 사회적 관심 밖에서 폐쇄적으로 진행돼 불법과 혼탁 선거로 인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를 막기 위해 2011년 농협법이 개정돼 올해부터 중앙선관위의 관리 아래 조합장 선거를 전국 동시에 실시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상황을 보면 동시선거의 취지가 무색하다. 지난달 25일 후보등록 마감 결과, 강원도 평균 경쟁률이 3.06대1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조합장 선거와 관련해 모두 14명의 선거사범이 강원도에서 적발됐다. 이들 중에는 현금 20만원을 제공했다 불구속 입건된 후보도 있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26일 시작되면서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거나 흠집내는 비방, 유언비어, 마타도어(흑색선전)도 난무하고 있다. 춘천에서는 모 후보가 식당에서 조합원들과 점당 1000원의 도박을 벌였다는 신고가 접수됐고 이와는 별도로 모 후보가 토지를 불법으로 매입했다는 내용이 담긴 유인물이 나돌고 있다. 또 현직 조합장이 조합 법인카드의 포인트를 유용했다는 소문도 퍼지고 있다. 불법 학력 기재와 조합원 식비 제공 논란도 불거지는 등 ‘네거티브 선거전’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정부와 농협중앙회가 ‘전국동시조합장선거’ 제도를 도입했지만 선거운동 방법 등 구체적 내용을 담은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 이 오히려 공명선거 분위기를 해치고 있다. 이 법은 후보자 합동연설회나 초청토론회를 없애고 후보자 혼자 선거운동을 하되 조합원을 찾아다니는 것을 금하고 있다. 유권자들에게 문자메시지는 보낼 수 있으나 음성·화상·동영상을 전송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이렇게 선거운동 방식이 과도하게 제한돼 후보는 자신의 공약과 비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유권자인 조합원은 조합장 후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후보자들 사이에서 ‘정책선거가 봉쇄되고 돈선거를 조장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조합장에게 주어진 막강한 권한도 과열 선거를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우선 조합장에 당선되면 적게는 5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 조합장 연봉이 1억원이 넘는 도내 조합도 상당수다. 2000명 남짓한 조합의 장이 인구 30만명 안팎인 춘천시장과 원주시장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다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최근 농어촌은 정부가 잇따라 체결하고 있는 FTA 때문에 수심이 가득하다. 이 파고를 넘지 못할 경우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다. 점점 피폐해져 가는 농어촌의 현실을 볼때 농어민들이 뽑은 조합장이 갖는 권한은 너무 막강하다.

이번 선거를 통해 조합장 선거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선거규정을 개선하고 투명한 조합 경영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농촌의 권력자’가 아닌 어려움에 처한 농어촌 현실을 바꿀 진정한 ‘일꾼’을 뽑을 수 있고 ‘깜깜이 선거’가 아닌 ‘정책 선거’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정정 당당하게 법을 지키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조합원들은 후보들의 면면을 꼼꼼히 살펴 풍요로운 농어촌을 만들 수 있는 적임자를 선출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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