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한국헌법학회장

다양한 직업 중, 도덕성이 가장 강하게 요구되는 직업을 들라면 법관이 아닐까 한다. 법관이 저울을 잘못 계량하면 불의를 저지르거나 불의에 동조하는 것이기에,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법관에게는 엄격한 윤리가 적용되고 있다. 탈무드에는 법관의 막중한 책임을 강조하는 다소 섬뜩한 경구가 있다. ‘법관은 날카로운 칼이 자신의 양 무릎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또 자기 아래에 마치 지옥문이 열려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법관들이 정의구현을 위해 외로운 길을 걷고 있지만 일부 법관들은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지키라는 말에 무디지 않나 우려된다. 법관의 일탈은 이미 도를 넘었다. 황제노역에다 막말판사, 심지어 사채업자와 한 배를 타는 등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이다.

얼마 전 부장판사의 댓글파동은 그 자체로 충분히 충격적이지만, 이에 대한 대법원의 대처는 실망을 넘어 절망적이기까지 한다.

법관은 파면할 수 없기 때문에 정직의 징계를 받더라도 정직기간이 끝나면 다시 재판에 복귀할 텐데,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법관의 복귀를 막기 위해서는 사표로 마무리하는 것이 더 큰 공익에 부합하다는 대법원의 인식은, 변명치고는 너무 궁색하다.

법관은 일반 공무원과 달리 파면징계를 할 수 없다. 이는 헌법이 징계처분으로 법관의 파면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관은 정직이하의 징계만 가능한데, 법관징계법은 일반 공무원의 정직기간 1개월 이상 3개월 이하와 달리 1개월 이상 1년 이하까지 정직을 허용하고 있다. 물론 법관에 대한 강한 신분보장의 헌법적 가치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러나 법관에 대한 강력한 신분보장은 재판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함이지 댓글, 막말, 군림을 허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1년 이하의 정직이라면 ‘진상규명, 재발방지, 일벌백계’의 효과를 나타내기 충분하므로 대법원의 설명은 상식적으로도 법리적으로도 적절치 않다. 단순한 사표수리는 꼬리 자르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침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법관도 사람이기에 잘못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에 대한 대응이다. 판검사를 제외한 모든 국가공무원은 잘못이 있을 경우 사표로 마무리되지 않고 처벌이나 징계를 하며, 퇴직은 그 결과물일 뿐이다. 그런데 유독 판검사의 경우에는 잘못이 있으면 사표로 충분하다는 것이 그간의 사법정의였다. 몇 년 전부터 비리검사에 대한 처벌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사채업자와 한 배를 탄 법관이 구속 기소되었다.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당연을 다행으로 여기는 우리의 수준이 씁쓸하다.



법원은 법관이 잘못하면 법복만 벗으면 된다는 전근대적 사고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야 한다. 법관직 사표는 다른 직업의 처벌과 동등하다는 잘못된 우월주의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또 법원의 시계는 아직도 근대에 멈춰있는데, 시계수리가 절실하다.

시간을 잘못 인식하는 시계는 더 이상 쓸모없다. 재판의 경우 판사는 법이 정한대로 판결을 내리면 되고 또 내려야 하는데, 마치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끄집어내어 시혜를 베풀어준다는 사고가 여전하다. 대법원은 급하게 불을 끄고 덮는 데만 급급하고 있는데, 앞으로가 더 걱정된다. 자식의 잘못을 덮기만 하면 자식의 나쁜 버릇은 고쳐지기 어렵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위반사건의 대법원 최종 판결이 궁금하다. 일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판사는 고등부장에 영전되는 은혜를 입었고, 이를 비판한 판사는 징계를 받았다. 국정원법에 위반되나 선거법위반이 아니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를 말끔히 제거해주는 고등법원의 판결이 있기에 사법의 앞날에 희망을 건다. 법관은 탈무드의 경고가 이 땅에서 그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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