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교육이라고 말하려면 따져야 하는 조건들이 꽤 많은데 그 중 하나가 실현이 가능하느냐의 문제이다. 이것은 아무리 좋은 교육이라 하더라도 어떤 것이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 때 부작용이 최소화될 수 있는지를 고려해 선택해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 교육이 항상 난관에 봉착하는 것은 바로 이 실현가능성 여부를 심사숙고하지 않고 실천부터 하려는 ‘졸속(拙速)’ 그것에 있다.

2001년 수능을 보았던 일명 ‘이해찬 키즈’ 학생들이 1999년 고1일 때 당시 교육부장관이던 이해찬씨는 ‘특기 하나만 있으면 대학 갈 수 있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고 학생들은 그에 맞춰 준비를 했다. 근데 웬걸 전년까지 쉽던 수능이 2001년에는 유례없이 어려워 ‘이해찬 키즈’ 학생들을 멘붕에 빠뜨렸다. 당시 대통령이 ‘정부 약속을 믿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충격을 드려 유감’이라고 사과를 했던 것만 봐도 그 사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졸속교육의 피해는 오롯이 학생 몫임을 보여준 사례이다.

인성 교육을 학교가 강제로 하고 사범대 입시에 수험생 인성이 반영된다는 것을 골자로 한 인성교육진흥법이 7월부터 발효된다한다. 이는 가능성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이다. 수능 1점에 수많은 학생들의 운명이 달려 있는데 인성을 어떻게 수량화하고 객관화할 것인지가 큰 숙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배려심 행복 같은 감성도 교육이 키울 수 있다니 학교에서의 인성교육은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분노 사회 방지를 위해 인성교육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깊이 공감한다. 그러나 ‘인성이란 개인의 특이한 행동과 사고를 결정하는 개인 내에 있는 심리학적 생리학적 역동적 조직’이라는 심리학자 알포트의 정의에 비춰볼 때 인성교육은 교과로 배우는 것보다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어른들 행동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익힐 때 효과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좋은 인성 기르기는 가정 사회 매스미디어가 변화하려는 노력을 함께해야 효과가 있는 종합적 결과물이지 준비 부실한 학교교육만으로는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이다. 교육을 입시나 점수랑 연결하겠다는 효능주의적 사고는 인성을 얕잡아 보는 일일지 모른다.

조미현 기획출판부 국장 mi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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