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의 책 ‘미움받을 용기’가 요즘 서점에서 몇주째 판매 1위다. 고뇌가 많은 청년이 철학자와 만나 삶에 관하여 묻고 답하면서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책의 제목 ‘미움받을 용기’란 세상에서 내 뜻대로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용기를 의미한다. 즉 타인의 기준에서 벗어나 현재의 ‘내가’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꼭 치러야만 하는 통관의례가 ‘미움받을 용기’라는 것이다.

최근 독일 메르켈 대통령이 일본 방문시 ‘나치 학살에도 독일이 존경받는 위치로 돌아온 것은 치욕스러운 과거에 정면으로 마주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군 위안부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오카다 민주당 대표에게 당찬 주문을 건넸다. 전 세계인들에게는 박수받을 용기를, 일본인에게는 미움받을 용기를 보여준 셈이다. 메르켈 대통령은 지도자의 편향되지 않은 과거사 인식과 그리고 진심어린 사과가 얼마나 존경받을 일인지를 증명한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얼마 후에 일본 후쿠다 총리가 이 대통령에게 일본 중학교 사회교과서에 독도를 일본영토로 명기하겠다고 통보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작은 시마네현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독도문제가 한일 양국의 대결구도로 확대되면서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과 그가 임명한 권철현 주일대사는 ‘일본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지 않겠다. 과거에 마음 상한 일을 갖고 미래를 살 수 없다’라며 분노는커녕 화합을 강조했다. 자기 밥도 못찾아 먹는 지도자의 척박한 역사의식이, 그리고 일본과의 협상에서 ‘카드’로 이용할 수 있는 과거사 문제를 접어두고 시작하겠다는 외교협상이 난감했다. 물론 몇달 뒤 이 대통령의 태도는 바뀌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기 때문에 그동안 미의회 합동연설 기회를 얻지 못했었는데 다음 달 4월에는 아베 총리가 합동연설을 할 예정이라 한다. 수비에 구멍이 뚫린 듯한 느낌이다. 과거사 인식이 너무 자가당착적인 일본인데 사과는커녕 무슨 망언이 나올지 불안하다. 메르켈 대통령의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미현 기획출판부 국장 mi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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