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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특파원의 얘기로 독일 베를린은 이념의 멜팅 포트(melting pot), 즉 이념의 용광로 상태라 한다. 그야말로 진짜 '빨갱이'부터 극우 보수 반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력이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사민당 녹색당 기민당 자민당 등 정치 스펙트럼 상 왼쪽의 빨강과 녹색, 오른쪽의 검정과 노랑 색깔의 각 정당들이 정가에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부럽다.
 베를린만일까. 아니다. 지금 지구촌은 말 그대로 이념의 용광로다. 중남미에는 좌파가 득실거린다. 쿠바엔 카스트로가 건재하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브라질의 룰라, 에콰도르의 구티에레스 등 좌파 득세 국가들이 미국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을 비꼬아 '선의 축'을 구축할 것이라 기염을 토한다. 반면에 포르투갈과 이탈리아에 이어 11월 24일 오스트리아 총선에선 중도 우파 국민당이 압승했다. 물론 극우 자유당에게 참패를 안겨 준 것이나 중도 좌파인 사회민주당을 제1당 자리에서 내려오게 한 우파의 승리다. 부럽다.
 부러워하는 까닭은 우파의 승리나 좌파의 건재 때문이 아니라 좌우의 격렬하지만 건강한 혼재(混在)에 감동 받았기 때문이다. 왜 감동하는가? 우리는 지난 시절에 이와 비슷한 이른바 그 '이념의 건강한 공존과 혼재'를 결코 맛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좌우는 이념적 대립의 열악성을 극복해 본 적 없지 않은가. 한반도의 좌와 우, 진보와 보수는 경쟁적이 아니라 적대적이었다. 즉 '죽이기' 아니면 '죽기'였다. 이 으스스함.
 그런데 이번 대선은 다르다. 정치권은 전략상 이념 대결이 아니라 주장하고 싶을 것이나 독재와 반독재,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이었던 지난 시절의 선거 양상과 같지 않을진대 이번 선거는 과연 무엇인가?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이번 대선은 이념 대결이다. 아니라고 할 터인가? 아니라면 우리 사회 '80 대 20'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정치계는 진정 이념 혹은 철학이 절대 빈곤한, 그리하여 이념이고 뭐고 권력만 잡으면 장땡인 마키아벨리적 세계인가?
 아니, 정말 최근 투표일이 다가오자 또 다시 이쪽도 저쪽도 아닌 무이념, 무정견(無定見)인 무정견(無政見) 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선거 때만 되면 유권자들의 눈과 귀를 속이고 '가짜 보수' '가짜 진보'들이 '참 우파' '참 좌파'와 뒤엉켜 선거 판을 이 판 저 판도 아닌 '개판'을 만들어 놓는다. 정당의 정체성을 표방하면 유권자들이 발길을 돌릴까 봐 구역질나는 정치적 현실주의가 득세하게 내버려두는 것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헛소리, 헛 주장들.
 이념은 절대 필요하다. 이념 논쟁도 필수다. 그 많은 토론은, 토론으로 드러난 미세한 의견의 차이는 결국 이념적 성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정책 방향이 다르므로 아무리 좋은 개별 정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도착지는 전혀 다른 곳이 되지 않겠는가. '색깔 논쟁'이 부담스럽다고, '수구(守舊) 보수'가 부끄럽다고 건강한 이념 논쟁을 중지하려 한다면 폭동과 학살, 전쟁과 혁명, 쿠데타와 정치 폭력으로 점철된 한국 정치사를 되풀이하자는 말인가? 이 위선들.
 이념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니얼 밸이 40여 년 전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예고하고, 다시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10여 년 전에 이데올로기 분쟁의 "역사는 끝났다."고 호언했으나 앞에서 보았듯 이념은 세계 도처에 꿋꿋이 살아남아 아직도 번성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가 21 세기 내내 힘을 발휘할 것이라 믿는가? 자유시장경제가 영원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가? 이 단견들.
 그러므로 기회주의는 가라. 진정 우리의 역사가 발전하려면 이번 대선에서 마땅히 이 땅은 이념의 용광로, 이데올로기의 멜팅 포트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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