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정길

원불교 횡성교당 교무

사마천의 <사기>에는 테러리스트들의 무용담을 기록한 자객열전이 있습니다. 왕조의 정사에는 결코 실릴 수 없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 첫 장에 조말이라는 노나라 장수가 등장합니다. 춘추오패 가운데 제나라 환공에게 노나라는 세 번이나 패해 항복의 뜻으로 땅을 바치자 환공은 성대한 자축연을 베풉니다. 이 자리에 조말도 참석하여 순식간에 환공의 목에 비수를 들이댑니다. 그리고 빼앗은 땅을 다시 돌려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공은 위기를 모면하고자 그러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조말은 비수를 멀리 던지고 아랫자리로 돌아가 담담하게 신하의 예를 갖춥니다. 환공이 분노하여 조말을 죽이려하자 명재상 관중이 나서서 말립니다. 약속을 지켜야 소탐대실하지 않고 제후들의 신뢰까지 얻을 수 있다는 간언을 받아들인 환공은 장차 춘추오패의 맹주가 됩니다.

약속과 신뢰라는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참 오래전의 이야기를 들춰보았습니다. 화사하고 아름다운 꽃망울이 터지는 이때에 눈물조차 말라버린 이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습니다. 격동의 시대를 겪어온 한국현대사에서 오월은 아픈 상처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는 사월도 새로운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달이 되고 말았습니다. 생기가 돌고 힐링이 되어야 할 화창한 봄날이 아픔을 삭여야 할 계절이 되어버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개인에게 우연하게 일어날 충격적인 사건이 집단적으로 발생하였는데 피해를 입은 이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곁에 있던 사람이 사라졌는데 남아있는 사람은 그 이유도 모르는 약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강자는 약속을 여러 번 하였습니다. 다수가 원하는 바대로 하겠다고 말입니다.



공자에게 경제적으로 든든한 후원자였던 제자 자공이 정치의 핵심에 대해 묻자, 공자는 군사력과 경제력과 백성의 신뢰를 얻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군사와 식량의 확보는 미루어 둘 수 있으나 백성의 신뢰를 잃어버리면 설 수가 없다고 <논어>에서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약속을 지켜야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내년에 맞이할 사월은 슬픔의 봄이 되지 않도록 강자들이시여! 수천년간 면면히 이어온 고전의 지혜를 가벼이 여기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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