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각 주마다 닉네임이 있다. 예를 들어 일리노이주는 16대 대통령 링컨이 자신의 주에서 살았다는 것 자체가 너무 자랑스러워 주의 닉네임을 ‘링컨의 주(Land of Lincoln)’라 명명하였고 자동차의 번호판에도 아예 ‘링컨얼굴과 Land of Lincoln’을 새겨 놓았다. 주나 도시의 닉네임이 사람과 관련된 것이 거의 없음을 감안할 때 링컨에 대한 미국인들의 사랑과 존경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일리노이 주 사람들은 링컨이 있어 행복하다. 반면 막말로, 잦은 설화로 그리고 언론플레이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것에만 승부를 거는 정치인을 둔 지역구 사람들은 부끄럽다.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지역민의 또 다른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말 실수로 회자되는 정치인들이 늘 그 얼굴이 그 얼굴인 것을 보면 막말도 일종의 난치 언어습관이다. 튀는 것으로 생존전략을 만들었나보다하고 이해해보기는 하는데 꼭 전략 탓 만은 아닌 것 같다. 그들 생각의 폭이 그렇고 이해와 관용의 그릇이 그렇고 인성이 그렇게 막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정도라서 그런 것 같다고 단정하면 오버인가? 루스벨트 대통령은 ‘커다란 몽둥이를 가질수록 부드럽게 말하는 법을 배워야한다’ 말한다. 정치인의 언어는 정의감도 있어야하지만 예의도 있어야한다. 당당함과 품위도 갖춰져야하고 신뢰감과 책임감도 전해져야한다. 즉 좋은 인격이 묻어나는 언어를 사용해야만 대중의 마음을 얻을수 있는 것이다.

새정련 최고의원 주승용, 정청래의원의 설전이 핫 잇슈였다. 4·29 재보선에서 완패한 작금의 시점에서 내부갈등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독일 철학자 칼 슈미트는 ‘정치란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새정련 정치인 모두가 동지로 결집된 의지를 보여도 국민들 신뢰를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인데 아군끼리의 싸가지 없음을 민낯으로 보이다니 수습불가이다. 정청래의원의 막말은 끊임없다. 영웅주의 심경으로 막 던진다는 느낌이다. 링컨같은 정치가가 되라고까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정치판의 평균 격을 낮추는 행위만큼은 자제해야한다. 지켜보는 국민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정치인, 자격미달이다.

조미현 기획출판부 국장 mi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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