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용규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도교육청이 ‘강원학교인권조례’ 공청회를 방해했다고 시민단체를 경찰에 고소했다고 한다. 조례의 명칭만 보면 학교구성원의 인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인데 대립하는 것이 이상하고, 또 어떠했기에 고소에 이르렀는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근래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학생인권조례’(이하 ‘조례’)와 관련하여 소란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조례제정을 주도하는 교육청과 이를 반대하는 교육부가 치열한 논쟁도 모자라 대법원에까지 그 정당성을 묻는 일도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것도 교육과 인권의 이름으로 이러한 대립 상황을 불러온 것일까. 이제라도 사태의 본질을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조례논쟁의 한 가운데는 조례 ‘제정’이 놓여있다. 그래서 묻고 싶다. ‘학교 구성원의 인권을 위해 조례가 반드시 제정되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꼭 그런 것은 아니다’이다. 아직까지 조례를 가지지 않은 지자체가 훨씬 더 많고, 조례의 유무에 따라 학교구성원의 인권보장에 현저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조례 입법은 국가(국회)가 나서야 할 일인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조례의 존재가 인권보장의 필요조건이 아닌 근본적인 이유이다. 조례제정론자들은 학교구성원, 특히 학생인권보장은 새삼스런 입법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실천사항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조례가 있어야만 학생 등의 인권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기존의 인권관련법령을 교육감이 그 취지에 맞게 해석하여 집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학생 등의 인권보장은 헌법을 비롯하여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과 그 시행령, 아동복지법, 청소년보호법 등에 이미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으므로, 마치 열린 문을 또 열겠다는 주장처럼 보인다.

물론 상위법령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조례가 필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조례안의 다수 조항들은 최근 전북학생인권조례에 관한 대법원판결에서도 밝혀졌듯이, 헌법과 관련법령의 규정을 그대로 반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 판결은 문제가 된 조례규정에 대해 ‘이미 관련 법령에 의하여 인정되는 학생의 권리를 열거하여 그와 같은 권리가 학생에게 보장되는 것임을 확인하고 학생인권 보호가 실현될 수 있도록 그 내용을 구체화하고 있는데 불과할 뿐’이라고 하여 상위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그런데 판결을 좀더 음미하면 조례의 규정이 중복적임을 지적한 것이자, 이는 결국 조례가 해석의 영역을 침범한 부적절한 과잉입법이라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감이 지금 당장 그렇게 하면 된다. 아마도 조례가 없는 지자체는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행정 조직과 인력이 필요하다면, 그리고 이것이 입법사항이라면 이 한에서 그 내용을 조례로 제정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과 같은 헌법의 모습을 한 조례안은 그 격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는 불필요한 중복·과잉 입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주 발생하는 현안부터 철저히 ‘실천’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인권보호이다. 이러한 교육행정을 통해 쌓여가는 인권판례는 교육현장은 물론 교육구성원 모두에게 정말 필요한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미 주어진 법적 권한을 성실히 준행함으로써 강원교육청이 조용하면서도 그 어느 지자체보다 인권을 꼼꼼히 챙긴 교육청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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