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며칠 전 국회는 공무원연금법을 개정하면서 국회법 개정을 끼어 팔았다. 국회는 행정부가 제정한 명령에 대해 ‘수정 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이 경우 중앙행정관청의 장은 시정을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법개정안에 대한 위헌시비가 한창이다. 여당 원내대표는 요구할 수 있을 뿐이지 강제력이 없으니 문제가 없다고 한다. 야당 원내대표는 한술 더 뜬다. 명령이 법률에 저촉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면서, 청와대를 향해 대통령이 헌법을 모른다고 힐난한다.

헌법은 정치적 공동체의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입법부가 법률로 규율하도록 하면서, 필요한 경우 정부의 명령에 위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법률의 위헌여부는 헌법재판소에, 명령의 위헌위법여부는 대법원에 결정권을 부여하고 있다. 헌법은 3권간에 견제와 균형을 요구하고 있는데, 정치적 공동체의 유지는 3권이 서로의 기능을 존중하는데서 시작하지만 끝도 기능존중에 있다.

정부가 제정한 명령을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는가. 할 수 없다.

첫째, 국회는 법률에 저촉된다고 여겨지는 명령에 대해 그 내용을 중앙행정관청에 통보할 수 있으나, 수정변경을 요구하거나 보고를 지시할 수 없다. 통보는 대등한 헌법기관 간 국정협력 차원에서 주의를 촉구하는 것이지만, 수정변경요구는 우월한 지위에서 ‘교정을 지시하는 것’이다. 더욱이 결과를 보고하도록 한 것은 상급관청이 하급기관에 대한 시정명령과 다르지 않기에, 행정에 대한 입법의 횡포가 아닐 수 없다.

둘째, 입법권은 국회의 권한이기에, 법률에 어긋나는 명령을 바로 잡는 것은 국회의 입법권의 내용이라고 한다. 법에는 법률, 명령, 규칙 등이 있는데, 헌법은 헌법기관의 독자성확보 및 기관 간 권력균형을 위해, 법률은 국회, 명령은 정부, 규칙은 대법원, 헌법재판소에게 각각 입법권을 분산시키고 있다. 입법은 국회의 전속적 권한도 아니고 단독권한도 아니다. 입법 중 법률제정만 국회에 전속되며, 이 경우에도 대통령에게 법률안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여 국회에 전속된 법률제정도 국회가 단독으로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대법원규칙이 법률에 저촉된다고 수정변경이나 보고를 요구할 수 없듯이, 대통령령에 대해서도 불가하다. 법률로 행정입법에 대한 ‘직접적 강제’는 헌법에 위배되며, 위헌법률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는 입법권 침해가 아니라 헌법수호에 해당된다. 시키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셋째, 국회는 수정변경요구를 할 수 있을 뿐 강제력이 없다는 여당 원내대표의 항변은 자가당착이다. 국회의 수정변경요구는 강제력을 넘치게 한다. 걸핏하면 장관을 부르고 호통 치는 것을 즐기는 국회가 수정변경요구를 했는데 아무런 답이 없거나 자신의 입맛이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바로 불러 윽박지르고 행정을 마비시킬게 불을 보듯 뻔하다. 시행령전반을 검토하겠단다. ’너나 잘해라’는 말이 이때를 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수많은 경제입법이 국회통과를 목매고 있는데 그나마 만들어진 법률의 시행령까지 관여하겠단다. 할 일만이라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지금 대한민국은 누구와 미래를 상의하고 고민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저성장 경기침체, 노령화, 청년실업, 게다가 북한 핵까지 안고 산다. 선진화법 덕분에 국회는 오도 가도 못하고 있고, 정치권은 개혁의 정도와 방법 모두 알고 있지만, 코앞의 총선이 두려워, 하는 척 만 한다. 정치는 끝없는 부정과 부패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거짓말에 또 속을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한계인가 아니면 인간의 한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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