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이중

변호사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일제 강점기 조선의 현실에 좌절하여 주정꾼으로 살아가는 근대적 지식인 남편과 그의 아내의 대화를 다룬 현진건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는 절망적인 어조로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라며 혼잣말을 하는 아내의 모습을 표현하며 끝을 맺는다.

지난주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에서 가계 빚 1100조에 이른 우리 사회의 현실이 이대로 괜찮은 것인지를 다루면서, 대학등록금부터 시작해서, 결혼자금, 주택 마련, 생활비까지 빚의 굴레에 갇힌 2030세대와 전셋값 등의 주거비용, 정년이 보장되지 않은 직장에서 밀려나 자영업으로 생존수단을 모색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방송했다.

정부의 금리인하정책과 주택담보대출 규제완화로 사람들이 그 이전보다 빚을 내지 않으려는 심리적 저항감이 무뎌지고, 대출을 권유하는 대부업체의 광고가 넘쳐나고 실제로 손쉽게 빚을 낼 수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면서 필자는 ‘빚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빚을 권하는 사회라고 하더라도, 빚을 낼 때에는 당연히 자신의 경제적 여력과 상환능력을 고려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빚을 낸 후에 성실히 변제를 하고 있던 도중, 예를 들어 가족 중에 누군가 아파서 치료비를 지출하게 되는 경우와 같이,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빚을 갚을 수 없게 되고 연체가 되어 빚 독촉에 시달리는 경우, 채무조정제도를 고려해 볼 수도 있다. 채무조정제도에는 신용회복위원회가 운영 주체인 개인워크아웃, 프리워크아웃 등이 있고, 법원이 운영주체인 회생 파산제도 등이 있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파탄에 직면해 있는 채무자에 대해 채권자·주주·지분권자 등 이해관계인의 법률관계를 조정해 채무자 또는 그 사업의 효율적인 회생을 도모하거나, 회생이 어려운 채무자의 재산을 공정하게 환가·배당하는 것을 목적으로 회생절차, 파산절차, 개인회생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회생 파산제도는 ‘성실하지만 불운한 채무자’가 경제적으로 재기 갱생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구제하는 제도인 반면, 채무자가 면책되는 부분은 채권자에게 재산상 손해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라서 회생 파산제도를 악용하려는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가 우려되기도 한다.



회생절차는 사채를 포함한 모든 채무를 조정 대상에 포함하고, 일정 수입이 있는 급여소득자나 영업소득자로서 최대 5년간만 빚을 갚으면 재기할 수 있는데,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법원에 접수된 개인회생신청 건수는 2010년 4만6972건에서 2014년에는 11만707건으로 2.3배정도 증가했고, 2015년 들어서도 4월까지의 신청 건수가 3만5029건에 이른다. 개인회생 신청 건수가 증가하는 근본적 원인으로는 가계부채가 증가하면서 채무자가 상환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요즘 메르스 여파로 사람들이 다니질 않아 소비활동이 급격히 둔화되어, 특히 자영업을 하는 서민들의 가계에 심각한 타격이 생기고 있다. 빚을 내 자영업을 하는 서민들에게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상황이 벌어진 것인데, 사람들이 느끼는 심리위축 및 불안감이 해결되지 않고 지속된다면 채무를 상환하지 못해 개인회생까지 신청하게 되는 자영업자들이 증가할 것 같아 우려된다. 절망적인 어조로 “그 몹쓸 사회가, 왜 빚을 권하는고”라며 혼잣말을 하는 아내들이 생기지를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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