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종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

지난 5일 강릉시 대전동의 드넓은 과학단지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 안에 자그마한 ‘농장’이 문을 열었다. 370제곱미터 부지에 3개의 재배실과 1개의 유리온실을 갖춘 이 농장에서 생산 하는 것은 작물이 아니라 ‘데이터’이다. 온실 내에 각종 센서를 설치해 온도와 습도 일조량 변화에 따른 작물의 생육 상태를 측정하고 그 데이터를 축적-분석해 어떤 조건에서 가장 소출이 좋은지를 찾아낸다. 그래서 이름도 스마트 데이터 팜(smart data farm)이다.

농업에 빅데이터를 활용하게 되면 경험과 날씨에 의존해 기르던 고부가 특용작물을 최적의 생육조건에 맞춰 기획생산하는 게 가능해진다. 생산량을 예측해 맞춤형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작물을 원료로 사용하는 제약사나 화장품회사 같은 수요기업으로부터 미리 ‘주문’을 받을 수 있다. 판로가 보장되기 때문에 생산자는 대규모 설비투자에 나설 수 있고, 대형 재배실을 만들 설비기업, 종자-종묘 기업, 원료의 건조-저장을 담당할 창고기업, 물류기업, 생약성분을 뽑아낼 추출기업 등 스마트 농장의 가치사슬을 완성할 수 있는 새로운 농업 창업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의료-건강관리 기기 산업에서도 새로운 가치사슬이 만들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맞아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의료서비스가 머지않아 시작될 것이라고 한다. 각 개인의 활동량과 식사량, 운동량 등의 건강 관련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어딘가’에 모아지고, ‘누군가’가 나의 심박과 혈압 혈당을 체크해서 올바른 운동법과 식사 메뉴도 제안해 준다는 그럴듯한 그림이다.

하지만 이를 가능케 할 데이터 서비스 플랫폼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래서 국내에는 아주 간단한 수준의 ‘IoT 혈당계’를 만드는 곳도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거꾸로 생각하면 사물인터넷 환경에서 다양한 센서를 통해 수집된 건강 데이터를 집적하고 분석하는 헬스케어 빅데이터 플랫폼이 만들어지면 다양한 의료기기 생산이나 헬스케어 서비스 창출이 가능해져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처럼 우리 지역 산업의 각 현장에는 접근방식을 조금 바꾸면 지금까지 실현하기 어려웠던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영역들이 적지 않다. 각 지역에 만들어지고 있는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지역 전략산업의 가치사슬을 혁신 지향적으로 새롭게 디자인 하고 그에 따라 기존의 산업 자원과 역량을 연결하고 가치사슬에서 비어 있는 부분을 채워 넣음으로써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미션을 갖고 있다.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지면 그 안에서 새로운 창업이 일어나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다.

강원도는 자연조건 및 사회경제적 환경 탓으로 인해 산업화 시대의 인프라는 충분치 않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기존의 산업 패러다임에 매달리지 않고 ICT 기반의 신산업의 흐름을 선도해 갈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 협력기업으로 참여하는 네이버는 데이터 기반의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의 주력 분야로 ‘21세기 경제의 신자본’으로 불리는 빅데이터가 떠오르게 된 배경이다.

센터에서는 빅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를 활용한 창업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갖춰갈 계획이다. 또 지자체-연구기관과 함께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를 활용한 농업, 의료기기-헬스케어, 관광 분야 창업을 지원하고 투자 펀드를 연결해 주는 역할도 맡게 된다. 이를 통해 각 분야에서 신산업의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의 실험은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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