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언

미술평론가

2015평창비엔날레 예술감독

유럽 최대의 대리석 산지는 예나 지금이나 아펜니노 산맥의 마그로산을 끼고 있는 카라라이다. 2000년 전부터 생산이 시작되어 이탈리아만이 아니라 전 유럽의 찬란한 석재문화를 일구게 한 곳이다. 앞으로도 2000년을 채광해도 다 못 캐낼 정도로 양질의 대리석이 풍부하다. 설악산 정도의 산이 땅 속까지 온통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고 상상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토록 양질의 대리석을 생산하면서도 돈벌이는 인근의 조그만 도시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그 석재를 가져다가 조각으로 가공하는 도시 피에트라산타가 더 큰 부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인구래야 5만 정도도 안 되는 소도시 피에트라산타는 고가의 조각작품을 제작하여 전 세계에 수출함으로써 부를 창출하는 곳이다.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로부터 시작하여 20세기의 거장 헨리 무어, 마리노 마리니, 페르난도 보테로, 줄리아노 반지 등이 바로 이곳에서 작업을 한다. 그런 거장들만이 아니라 수많은 조각 장인들이 근무하는 스튜디오들이 있어, 전 세계의 예술가, 박물관, 기업 등으로부터 조각작품 주문을 받아 수출하는 것이 그 도시의 주력 산업이다.

필자가 어느 조각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 마침 한국의 어느(지금은 고인이 된) 종교지도자 무덤에 들어갈 석재 부조 장식을 가공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거장들이 많이 작업하기 위해 머무는 곳이다 보니 작품을 공급받기 좋은 장점 때문에 굴지의 갤러리들이 또한 즐비하다. 그야말로 피에트라산타는 시민들 대부분이 예술가 아니면 가족들이다. 두 도시에 조각가들이 많이 거주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카라라에는 유학생이나 가난한 예술가들이 많이 살며, 피에트라산타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지명도 높은 조각가들이 주로 살고 있다는 점이다. 심하게 표현하면 재주는 카라라가 부리면서 돈은 피에트라산타가 벌어들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도시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카라라는 거저 돌을 주워 작업할 수 있어 가난한 유학생에게 더없이 좋은 곳이다.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채석장이 흥미로운 관광 볼거리가 되어 관광객들을 유인하고 있다. 하지만 광산도시 특유의 삭막함은 감출 수 없어 오래 머물게 하지는 못한다. 반면 피에트라산타는 좋은 바다와 쾌적한 도시환경, 특히 구상한 바를 바로 제작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생산시스템을 지니고 있어 전 세계의 예술가들이 머물고 싶어 하는 곳이다. 세계적인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을 광장이나 거리에서 일상처럼 만날 수 있다 보니 관광객들 또한 대단히 많다.

물론 두 도시는 서로 상생하는 관계이다. 하지만 우리 강원도가 새로운 미래를 창출해내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려한 자연만큼은 그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유인의 조건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다만 거기에 부가될 수 있는 그 무엇이 한 가지만 더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강원도가 자연과 함께 하는 등산, 해수욕, 스키, 래프팅 등의 레저스포츠 방면에서는 최고의 관광지임에 틀림이 없다. 바로 거기에 문화적인 고부가가치를 갖출 수만 있으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놀랍게도 강원 지역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훌륭한 예술가들이 소리 소문 없이 유입, 정착하고 있다. 속초의 경우만도 ‘설악산 그림 미술관’을 설립해도 될 만큼 많은 예술가들이 장·단기로 머물고 있다. 강원 지역으로 체류 및 귀향, 정착하거나 한 예술가들을 정확히 파악해볼 필요가 있지만, 그 결과는 놀라운 숫자를 기록할 것으로 짐작된다. 2015평창비엔날레는 내용적으로 이주 작가들의 가세가 중요한 키이다. 모두가 다 소개되고 있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여러 기획들을 통해 널리 소개되고 역할들이 부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중한 자산들이 강원으로 향하고 있는 발걸음들을 예의주시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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