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찬

강릉단오제위원회 상임이사

인문학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인문학의 부활을 얘기한다. 눈부신 속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변화하고 있는 첨단 과학 문명 시대의 한복판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청년의 사회 진출에서는 여전히 인문학 전공자들이 홀대를 받는다는 소리가 들린다. 수요공급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이유가 있거나 필요를 충족시킬만한 인문학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현대 사회와 인문학이 어떻게 공존하며 발전해 나갈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의 근간인 인간이 중심이 되기 위해서 현재 무엇이 필요하고 중요한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요즘 인문학의 한 부분인 문화와 역사도 확실히 덕을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통문화와 역사를 우리 삶에 좀 더 가까이 가져 오려면 실용성을 바탕으로 한 실사구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도내에도 전통문화와 역사 등 문화적 자산을 관광과 접목해 경제 활성화를 꾀하는 등 노력이 활발하다. 박물관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단순히 유물전시에서 그치지 않고 재미와 함께 시민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또 도내에서 이뤄지는 문화 유적지 발굴이나 복원 사업은 나름대로 역사적 가치가 높고 중요한 것이다.

지역으로서는 정체성과도 연관되기 때문에 그 의미는 더욱 클 수 있다.

그렇지만 문화 유적지의 일괄 복원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그 시대적 상황과 가치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문화의 현장성과 상징성을 살릴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한 인문학적 토대 위에 정비나 복원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대표적인 문화유적지 복원이 원주의 강원 감영과 강릉의 대도호부 관아이다. 강릉 관아의 경우 발굴 조사 당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유구가 모두 발견됐지만, 건물 사진이 존재하고 시민들의 관심도 끌 수 있는 조선시대 건축물로 복원되었다. 실용성이 중요한 가치가 된 것이다. 이곳에서는 대규모 문화행사의 주 무대로 활용되는 등 전통도시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국보인 임영관 삼문이 있는 강릉대도호부 관아의 경우 건축사 자료관이나 교육장을 설치해 국내 건축사에서 최고(最古), 최초(最初)의 수식어가 붙은 건축물의 보고인 강릉(임영관 삼문과 보물인 오죽헌, 해운정, 향교 등)을 이야기하면 관광이나 교육적인 면에서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강릉 ‘굴산사지’의 경우 정비나 복원을 고려한 발굴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굴산사의 위용을 밝혀줄 수많은 불교 유물과 유구는 물론 다리가 부러진 토마(흙으로 빚은 말) 20여 개가 발견돼 그곳에 성황당이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또 1625년 율곡 선생을 기리는 송담서원의 전신인 석천묘의 명문기와 유물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불교, 유교, 무교가 한 곳에서 유물로 나온 것이다. 이는 시대를 막론하고, 이 지역민들은 이곳을 가장 중요한 장소라 여기고 그 가치를 부여했음을 알 수 있다.

굴산사는 신라 9산선문의 하나로 우리나라 불교 조계종 법맥의 적통성을 간직한데다 범일 국사는 강릉을 지켜주는 강릉단오제의 주신이기도 하다.

따라서 굴산사의 정비·복원은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이다.

여기에도 유구 중심의 현장성과 신화 속 인물과 연계돼 최대한 유·무형이 함께 하는 유적지의 특성을 살리는 정비·복원이 이뤄져야 한다.

현재와 미래의 요구를 염두에 두고 예산 투자와 시대적 가치를 구현하는 실사구시적인 정비나 복원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복원된 화려한 건축물보다는 그 역사적 현장을 통해 그 당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더 큰 호기심과 관심을 갖고 있다.

이제는 발굴과 복원에만 초점을 맞추고 예산 확보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정작 문화가 갖는 역사적 상상력을 키우는데 소홀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할 때이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과학자(대기업), 인문학을 탁월한 테크놀러지와 결합을 시킬 수 있는 전문가(스티븐 잡스)를 원하는 시대임을 볼 때, 유적지 정비나 복원이 보다 더 넓은 의미에서 ‘통찰적 역사를 배울 수 있는 현장’이 되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시간과 예산을 낭비하지 않고 도도한 역사를 이어가는 실사구시의 정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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