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향

강원대교수

비폭력주의의 대명사이자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로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의 말을 빌리면, 인간사회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원인은 다음의 8가지로 압축된다. 노동에 근거하지 않는 재산, 양심을 거스르는 쾌락, 개성없는 지식, 도덕없는 상거래, 인간성이 상실된 과학, 희생없는 맹목적 기도, 원칙없는 정치, 책임없는 권리 등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개인적 수준 그리고 구조적 수준에서 폭력을 불러온다. 그러한 폭력 앞에서 일상적으로는 사회구성원 간 분노와 원망이 폭발하고, 더 이상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살하고, 작은 이익에서부터 국가 이익을 둘러싸고 분쟁이 빈발하고, 강자와 약자의 힘의 대결이 구조화된다. 20세기 초 식민지로부터의 독립과정과 국가건설의 혼돈기에 나온 간디의 진단이 21세기를 사는 오늘의 현실에도 적중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담하다.

이른 바 재벌그룹의 편법 증여 및 상속과 재산분쟁, 성과 관련된 모든 종류의 억압과 차별, 대학의 혼란과 위기, 노동의 가치에 대한 인색하고 부당한 접근, 생명에 대한 경시, 인권과 기본권에 무관심하고 그를 무시하는 기계와 기술우선주의, 구성원의 마지막 선택과 호소수단이 자살이 되어버리는 상황, 이윤지향주의 정책의 혼선, 타인과 약자에 대한 군림과 차별, 책임감으로 포장되고 미화되는 권력의 독선과 아집, 이 모든 것이 결국 인간 상호간 폭력을 부르고, 위험한 사회를 초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좋은사회’에 대한 희망을 놓지 못한다. 좋은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좋은사회’에 대한 관점과 입장은 매우 다양하다. 저마다 각각일 수 있는 ‘좋은 것’에 대한 판단이 공감을 만들어내고 이것이 확산되어야 하므로 개념 자체가 가치중립성을 유지하기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좋음에 대한 입장 차이를 전제로 하고 수많은 부차적인 문제에 도덕적 다원주의를 허용하면서도, 사회가 추구하고자 하는 핵심가치를 사회구성원이 공유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좋은사회로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그 핵심가치를 특정집단이나 세력이 독점하거나 선점하도록 허용하지 않는 ‘주체의 각성’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한 요즘이다.

오래전에 읽은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가 떠오른다. 목민(牧民)의 궁극적 목적과 정치의 본질을 찾고자 했던 선생의 노력은 앞에서 예를 든 간디와 마찬가지로 시대가 전혀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유효한 것 같다. 이런 구절을 기억하고 있다. “벼슬살이의 요체는 두려워할 외(畏), 한 자뿐이다”. “백성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이다.“수령이라는 사람은 객(客)이요, 백성들은 주인”이다. 전통사회에서의 백성은 더 이상 없다. 정약용 선생의 시대에도 이러한 정신이 살아있었는데, 하물며 오늘날 권력을 교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민주주의 시대의 유권자나 그 밖의 사회조직의 구성원이야말로 잠시 권력을 위임받은 세력이 진정으로 저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두려워해야 하는 존재 아닌가. 우리 유권자는 스스로 두려운 존재임을 자각하고 있는가. 권력이 일반구성원을 통제와 조종의 대상이 아니라, 두려운 존재로 인식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사회의 요건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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