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해진

문화콘텐츠학 박사

가톨릭관동대 교수

이런, 또 가을이다. 며느리보단 애지중지하는 딸에게 내어준다는 가을볕이 지금 강원도에 지천이다. 그 볕에 초록이 지쳐 단풍든다는 이 가을에 산에는 산대로 강에는 강대로 바다에는 바다대로 자연의 멋스러움이 스며들고 있다. 우리 인간들도 가을이면 자연이 주는 낭만을 찾아가려고 몸이 근질거리고 마음이 들뜬다.

가을이 오면 책 읽는 수준을 넘어 온갖 문화행사가 전국적으로 다채롭게 펼쳐진다. 우리 강원도도 예외는 아니어서 9월과 10월에는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축제를 비롯한 행사들이 계획되어 있다.

강릉의 경우 ‘명주인형극제’를 시작으로 ‘강릉 커피축제’, ‘주문진 오징어축제’, ‘교산허균문화제’, ‘강릉 한과축제’ 등이 손님들을 맞이한다. 이 외에도 ‘이런 축제가 있었어?’ 하는 축제들도 각 지역마다 많을 것이다. 말로 하면 입이 아프고 글로 쓰면 손목이 시릴 정도다. 짧은 기간동안 축제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이 많은 축제를 이 가을에 다 다녀오긴 정말 불가능하다. 해마다 지역을 달리한다면 수년에 걸쳐 다 만나 볼 수 있긴 하겠지만, 하지만 이 모든 축제가 정말 발품을 팔고 아까운 가을시간을 소비해 가며 다녀올 만한 축제인가를 생각하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특히 축제가 지역의 대표적 문화콘텐츠이자 관광콘텐츠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문화’라는 글자에 ‘콘텐츠’가 붙기 시작한 때는 전 세계적으로 밀레니엄 신드롬이 불어닥치던 2000년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작가들의 창작예술작품이 문화상품으로서 무한한 가치를 내재하고 있음을 눈치 챈 머리좋은 제작자들은 영화, TV드라마, K-pop, 게임, 애니메이션, 뮤지컬, 만화와 같은 대중친화적 문화장르들을 중심으로 문화상품들을 부가가치 높은 소비재로 만들었다. 이 때부터 작가들의 창작품을 이전의 인식태도와 구별하려는 의도로 ‘콘텐츠’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콘텐츠’는 관광, 교육, 뉴스 등 다양한 분야와 매체에 사용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부분의 문화콘텐츠는 관광콘텐츠와 마찬가지로 경험재인 소비재다.

내가 직접 경험하기 전엔 그 가치를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경험자체를 판매하고 소비한다. 경험하지 않고도 대체로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탐색재인 일반 소비재와는 성질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의한 평가가 중요하고 이로 인한 인지도가 중요하다. 해본 사람들의 입소문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입소문은 본질에서 나온다. 관광객들은 그 축제만이 가진 본질, 다른 축제와 차별되는 본질을 찾는다. 그 본질은 바로 그것만의 문화다.

축제의 소재는 매우 다양하다.

자연, 문화재, 문화유산, 문화인, 예술가, 향토음식, 지역농산물 등과 같이 지역과 연관된 소재 뿐만 아니라 영화제, 음악제, 문화제 등으로 대표되는 비연고성 지역축제도 많다.

때문에 축제의 성패는 지역색, 향토색이 아니라 축제에 담긴 문화의 정체성 그 자체다. 축제가 저마다 나름대로의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고 보여주지 못한다면 축제로서의 기능은 물론 관광촉진의 기능을 기대하기 힘들다. 꽃은 꽃대로, 명태는 명태대로, 커피는 커피대로 나름의 특징과 문화적 정체성을 구축해야 한다. 지역축제는 절대로 남의 성공사례를 따라만 해선 절대 성공할 수 없는 분야다. 잘되고 있는 축제는 잘되는대로, 그렇지 않은 경우엔 정말 이점을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

간혹 ‘문화’ 혹은 ‘예술’과 ‘문화콘텐츠’를 대립적 의미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분명히 교정되어야 할 시각이다. 문화와 예술적 창의성을 담지 못한 문화콘텐츠는 의미가 없을 뿐더러 상업적 성공 또한 쉽지 않다. 향토색이나 지역색이나 문화적 전통성을 담으라는 말이 아니다. 동시대의 사람들과 호흡을 같이 하는 그런 살아있는 문화를 말하는 것이다.

엄청난 무리의 관광객들이 가을을 온몸으로 찾아나서고 있다. 바로 이 때 강원도는 저마다의 문화적 정체성이 담겨있는 문화콘텐츠와 관광콘텐츠를 그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축제를 위한 축제는 필요없다. 앞으로 최소한 10년 이상 지속하기 힘든 축제라 생각된다면 반드시 변화와 노력이 필요하다.

벌써 늦었다고? 지금 당장 안되면 내년을 준비 하면 된다. 내년이라고 가을이 비켜가진 않을테니까. 내년에도 “에고, 또 가을이네” 할테니까.



▶약력= △문화콘텐츠학 박사 △영화 및 문화콘텐츠 기획/제작자 △가톨릭관동대 교수(미디어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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