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현주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민주주의의 근원적 가치는 정치적 평등에 있다. 인간은 모두 다르게 태어나지만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부여받는다. 물론 평등하다고 항상 공정한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 정치철학자 존 롤즈의 주장처럼 결과적으로 사회적 약자에게 이익이 된다면 불평등은 정당화될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특정 집단이나 지역이 과대 혹은 과소 대표되는 현상 또한 마찬가지다.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화천이나 양구같이 정치경제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주민들이 과대 대표될 경우,정치적 평등에는 위배되지만 더 정의롭고 더 공정하다. 과대 과소 대표의 불평등을 용인할 수 있는 정도와 범위는 정치적 판단과 합의에 따를 일이다.

2014년 헌법재판소는 공직선거법 제25조 제2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통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대 대표의 한계를 과거 3대 1에서 2대 1로 축소했다. 즉 인구수가 가장 많은 선거구와 가장 적은 선거구의 편차를 3배에서 2배로 줄여야 평등과 공정성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 헌재의 정치적 판단이다. 강원도의 3개 선거구를 포함하여 주로 농어촌 지역에 분포된 15개 선거구가 새로운 인구 기준에 미달하고 수도권의 24개 선거구는 기준을 초과하게 됐는데,각 정당과 지역,국회의원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선거구 획정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 정원을 300명으로 고정시켜 놓고 비례대표 의석수 축소나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기는 만만치 않다. 이번에 어렵게 합의하더라도 농어촌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4년짜리 미봉책이 될 뿐이다. 물론 국회의원 수를 늘리면 쉽게 해결될 문제지만 항상 여론을 떠보다가는 슬쩍 가라앉는다.

지역 간 인구 불균등 심화와 그에 따른 선거구 획정의 어려움과는 별개로,정치공동체의 규모가 커지고 구성이 복잡다단해진 현대 사회에서 지역,세대,계층,직능의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수가 좀 더 늘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1명이 대표하는 인구는 16만 7400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평균의 약 1.7배 정도다. 영국의 경우 인구는 약 6500만 명인데 하원의원 수는 646명이고,독일은 8000만을 조금 넘는 인구에 연방하원의원은 600여 명에 달한다. 국회의원 수가 300명인데도 중구난방에 무엇 하나 제대로 합의해서 내놓는 게 없는데 그 수를 500명 정도로 늘리면 국정의 효율성만 더 떨어뜨리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원론적으로 말해서 민주주의는 최선을 추구하는 제도가 아니라 소수가 범할 수 있는 최악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이다. 특히 의회는 일사불란함이나 효율성보다는 다양성,견제와 균형이 더 중요한 가치로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를 보더라도 민주주의는 항상 대립과 갈등,그에 따른 비효율을 동반했다. 민주주의 자체에 내재한 제도적 비효율성은 전제정치를 예방하기 위해 치러야할 일종의 비용인 셈이다.

국회의원 정원을 늘리는 방안은 가장 쉬운 듯해도 실제로는 가장 실현가능성이 낮다. 일단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무능과 방종에 대한 국민 정서는 정치적 냉소를 넘어 혐오에 이를 정도로 악화돼 있다. 국민을 설득하려면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의무와 책임은 강화하는 반면 국정활동과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특권과 특혜는 대폭 삭감하거나 없애야 한다. 임기 단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국회의원들도 원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권력은 나눌수록 줄어드는 법. 의석수가 늘어나도 경쟁이 치열하기는 마찬가지인데 파이를 잘게 쪼개는 것으로 부족해 크기까지 줄이자면 어느 누가 선뜻 동의하겠는가. 그들이 소극적인 데는 그다지 특별한 이유나 깊은 뜻이 숨어있지 않다. 여론 악화에 대한 두려움은 그 다음이다. 어쨌든 이번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갈등을 보면서 문득 돈 적게 드는 국회의원을 500명 정도 선출하는,저비용 비효율의 국회가 좋겠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 약력=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문학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문학석사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스쿨 언론학 박사 △한국언론학회 연구이사 △한국언론정보학회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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