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응섭

강원도교육청 학교문화담당

“따르릉~” 가을 오수(午睡)를 즐기는 틈을 비집고 들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화들짝 온 몸의 세포들이 촉각을 세운다. 이윽고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낯익은 후배의 목소리가 잔잔한 포물선의 전율로 전해져 온다.

“가을전어가 제 맛이라는데 저녁 달빛에 막걸리와 어울려 보시는 것 어떠신가요?” 후배의 반가운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막걸리 한 잔 하자는 제안에 한 걸음으로 달려 나간다.

바쁜 일상에 쫓기다보면 제철에 나는 별미를 맛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어쩌다 시기를 놓치거나 만만한 친구 만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아서 막걸리 한 잔 하자는 공약(空約)을 남발하기도 하지만 막걸리 한 잔이 꼭 술 한 잔 하자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만나고 싶다든지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인듯하여 전화통화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전달하였다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나는 농사일을 하시는 아버지 새참 심부름으로 가끔씩 막걸리를 받아오는 특명을 수행하기도 했다. 집에서 왕복 시오리 길을 걸어 주점을 다녀오는 길에는 늘 양은주전자와 함께 했다. 찰랑찰랑하게 받은 막걸리는 걸음을 걸을 때마다 주전자 주둥이를 통해 한 두 방울씩 흘러넘치기도 하고 까치걸음으로 종종종 걷다보면 울컥하고 막걸리가 넘쳐나서 다시금 걸음걸이를 고쳐 걷곤 했다. 흘러넘치는 막걸리를 막아볼 셈으로 강아지풀의 줄기를 뽑아 주둥이에 꽃아 걷기도 하고 한 두 모금 마시는 것으로 흐르는 것을 대신하기도 했으니 이미 초등학교 시절에 막걸리 맛을 본 셈이다. 천신만고 끝에 집에까지 막걸리 심부름을 하고 나면 칭찬보다는 주전자속으로 움푹 들어간 막걸리 양을 보면서 심부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핀잔을 듣고 서운한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 핀잔이 꾸중보다는 수고했다는 칭찬의 반어적 표현임을 알면서도 눈물을 흘린 것은 내가 막걸리를 미리 마신 것에 대한 방패막이였음도 부인할 수 없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던 신규교사 시절,학교 일과를 마치고 마을 어귀라도 거닐라치면 바쁜 일손을 잠시 멈추고 새참을 드시던 마을 어른들이 손짓을 한다. 행여 못 보기라도 할까 큰 소리와 함께 부를 경우가 많았는데 다가가서 인사를 드리면 여지없이 노란 양은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한 잔 넘치게 부어 주시면서 앉기를 권유받았다. 논두렁이건 고추밭이랑 근처든지 평지를 골라 새참을 드시던 마을 어른들은 대개 학부모님이시거나 할아버지 할머니 분들이셨는데 막걸리 한 잔과 더불어 아이들 학교 이야기와 집안 이야기를 섞어 나누다보면 이내 해가 기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넉살이 많았던 총각선생님 시절의 나는 퇴근 후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서 논 밭일을 하시는 분들과 새참을 나누는 기회가 많았다. 한여름 오후 5시 퇴근 무렵의 농촌 풍경이란 여름 해는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느티나무 우듬지쯤 걸터앉아 있고 나무 그늘에서는 어김없이 새참을 즐기시는 분들이 늘 그림처럼 계셨다. 그 그림 속에 나는 의도적으로 동참하기도 하고 학생 상담을 핑계로 어울리기도 하면서 일상의 한 부분처럼 지내기도 했다. 농사일이 끝난 저녁,마을 청년 서너 명과 함께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즐기기도 하면서 한 해를 지내고나니 웬만한 마을 어르신들의 생일이나 제삿날까지도 대충 알 수 있을 정도로 친분이 깊어졌다. 벌써 삼십여 년 전의 일이니 지금 생각해보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막걸리 중심의 술 문화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양은주전자를 들고 막걸리 심부름을 하는 아이들 모습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아련하게 남아있는 양은주전자의 추억 때문에 시나브로 찾는 막걸리 주점에서 잊혀진 어린 시절의 추억과 부모님의 모습의 되새기기도 한다.

오늘 저녁은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에게 전화로 안부라도 물어봐야겠다

“어이 친구, 오늘 저녁 막걸리 한 잔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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