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善德碑)

▲ 이도형

국토정중앙교회 목사

제가 살고 있는 이웃 마을에는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양구 구암리 약수터가 있다.

어느 날 새벽,약수터로 가던 중 길옆에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음을 보게 되었다. 자세히 보니 이름도 생소한 선덕비였다.

옛날 목민관이 선정을 베풀고 그 지역을 떠날 때 백성들이 선정을 베푼 관원의 덕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하여 선정비나 불망비를 세운 것은 여러 기록들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데 선덕비는 낯선 말이었다.

세워진 선덕비의 주인공이 특별한 이유는 국록을 받던 관원이 아닌 평범한 구 한말의 백성이며 의술을 생업으로 삼고 살아가던 평민이라는 사실이다. ‘醫生 金翼河 善德碑’(의생 김익하 선덕비)라 되어 있는 이 비석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한 사람의 삶의 궤적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이분은 ‘성품이 온순하고 선량하였으며,의학을 좋아하여 무료로 진료하니 이웃 마을에서 칭송하는 비석을 세웠다. 그 비명에 이르기를,여러 해를 시술하여 온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였다.’고 강원도지는 자선을 소개하고 있다.

평생을 불우한 이웃주민에게 의술로 구제했던 그의 공적이 근동에 살던 지역부호들을 감동시켰기에 지역유지들이 뜻을 모아 양구군 남면 구암리 마을 입구에 비석을 세우고 비바람을 막아 줄 창선각도 건립하였다.

나아가 이 선덕비는 민족의 비극인 6.25라는 풍파 속에 파손되어 아랫부분이 없어지고 윗부분만 하천에 버려진 것을 1955년도에 후손들과 주민들이 상여로 운반하여 재건립하는 사연을 담고 있다.(양구군지 하, 626쪽 참조)

요즘이야 재능을 가진 이들이 사회 환원 차원에서 재능기부를 하는 일이 자연스럽지만 그 옛날 자신의 재능을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사용했다는 점은 후세들이 높이 평가하고 본받아야 할 점이라 생각한다.

의생 김익하 선덕비를 보면서 소설 동의보감의 한 장면을 대입시켜 본다.

이은성씨의‘소설 동의보감’에 보면 감동 깊은 장면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 명의 허준의 스승인 유의태가 자신의 아들인 도지에게 의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에 대하여 일러주는 내용이다.

유의태는 참다운 의원이 지녀야 할 자세를 사랑이라 정의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병들어 앓는 이를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는 마음”

이러한 아버지의 말에 아들인 도지는 현실적인 항변을 한다.

“위엄 세우지 않고 다정하게 굴면 종당에는 약값을 깎으려 기어 붙는것이 병자들의 심성올시다.”

“의원의 신세를 지면 아무리 독하고 가난한 이라도 밥 한술은 먹여 주는 터이니 병자의 빈부를 왜 굳이 따지려 들꼬?”

이러한 남편의 답변을 듣던 아내 오씨가 “그럼 의원은 흙 파 먹고 삽니까?”라며 항의성 있는 말을 하자 유의태가 다시금 던지는 한마디의 말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깊은 울림을 던져준다.

“의원도 의원 나름,고을마다 의원을 자처하는 자가 별처럼 깔렸으되 병자를 긍휼히 여기는 의원은 많지않아!”(소설동의보감 상권,이은성 지음,창작과비평사143쪽)

당대의 명의였던 유의태의 생명 살림을 위한 의원의 마음가짐을 그대로 실천했던 ‘의생 김익하 선덕비’를 보면서,군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목회자로서의 바른 삶과 실천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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