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노순

한라대 교수

청년층의 분노와 절망이 심상치 않다. 모든 미래를 포기했다는 자조적인 용어로 N포세대가 등장하더니,대한민국에 희망이 없다는 헬조선이 유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흙수저와 금수저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수저 계급론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불공정성을 비꼰다. 이정도 되면 실업 문제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우려의 대상을 넘어선 절박한 위기 수준이다.

사회에 막 진출하려는 청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꿈꿀 수 없다면 국가의 미래는 암울하다. 체감 실업률이 25%가 넘는다는 통계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취업원서를 수 십 통씩 쓰고 입사했다면 그나마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정도이다. 흙수저의 계급을 극복한 개인은 그만큼 큰 일을 해 낸 것이다.

흙수저의 자식은 금수저를 물려준 부모가 어떤 부류인지 안다. 힘 있는 부모는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거나 군대를 가더라도 총기난사로 억울한 죽음을 당하거나 구타로 목숨을 잃지 않을 보직을 맡도록 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사법시험을 통과하더라도 끗발 있는 아버지의 전화 한 통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젊은이는 원서를 들고 뛰는 길밖에 없다.

이런 얘기는 그나마 뉴스라도 나왔으니 알게 되었다. 하소연할 데 없는 많은 평범한 청년들의 응어리진 가슴은 기사를 읽는 동안만이라도 위안을 받는다. 세상 도처에 벌어지고 있는 참을 수 없는 부조리함을 여러 사람이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언론 보도로 운 나쁜 몇 사람은 얻었던 자리를 내놓으면 이젠 뭔가 바꿔 질려나 하는 기대를 준다. 하지만 채용을 규정대로 했고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강변하며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잊기를 기다리는 부모들도 있다. 역시나 우리 사회가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은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다. 비슷한 사건이 잊을만하면 또 터진다는 얘기다.

어디 이뿐인가. 누구나 들어가고 싶은 대기업들은 어떤가. 귀족노조라고 비판을 받는 일부 대기업 노조가 자식을 대물림하는 근로조건을 요구했다는 소식은 뉴스거리도 아니다. 신의 직장이라는 공기업이나 선망의 직장 경쟁률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수 십대 일은 기본이니, 경쟁이 높지 않으면 오히려 이미 내정되었다는 반증으로 인식될 정도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경험이다. 어렵사리 서류 전형을 통과하고 면접에 갔더니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는 그런 얘기들 말이다.

이러다보니 자식의 취업을 지켜보는 부모는 주변에 조그만 연줄이라도 있는지 늘 고민한다.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주변의 얘기를 자주 듣다보면 부모는 자식 못지않게 속상하다. 부모는 미안하기까지 한다. 여기저기 줄대주는 부모들이 있다는데 자신은 내려줄 동아줄이 없으니 말이다. 대한민국을 연줄의 사회라고 말하는 이유가 따로 있지 않다. 실력 탓하기 이전에 연줄이 없음을 한탄하는 사회다.

흙수저는 연줄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자식의 입에 흙수저를 물려준 부모는 자식의 부족함을 지적하지만 마음이 개운치 않다. 변변하지 못한 부모의 처지가 자식의 앞길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자책이 크기 때문이다. 자식들은 화나지만 안다. 말없이 지켜만 보는 부모의 마음이 무겁다는 걸. 그러니 청년들이 취업의 문을 두드릴 때마다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부모의 배경이 결정한다고 믿으니 헬조선을 외치는 것이다.

공정한 규칙과 실력으로 경쟁하는 사회는 금수저를 갖고 있는 사회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해야 가능하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자식과 그 부모가 사회를 탓하면서 희망 없는 희망 찾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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