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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가 붕괴된 자리에 극단이 자란다

송현주 2015년 11월 20일 금요일
   
▲ 송현주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특정 종교와 죄악을 연결시키는 것은 일종의 금기다.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온갖 폭력들이 실제로는 정치경제적 갈등에서 기인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테러에서 이슬람을 떠올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불행한 세상에 살고 있다. 2001년 발생한 9·11 테러가 결정적이었는데,그 사건 이후로 이슬람과 테러리즘의 연관성이 공공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무신론자들은 이슬람이나 기독교나 별 차이가 없고 모든 종교가 초월적 믿음에 근거해 비이성적이고 반문명적인 행위를 추동한다고 본다.

대표적으로 옥스퍼드대학교의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신이 이 우주와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들어 냈다는 ‘신 가설(God Hypothesis)’은 사악한 망상일 뿐이고,이러한 믿음이 갖가지 유해한 행위를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비록 무신론자이지만,나는 자연과학에 기초한 진화론적 무신론자들의 입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한 해석이 종교에 대한 통렬한 비난과 조롱에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종교에 심취한 비이성적 인간들의 계몽해 궁극적으로는 종교를 폐지해야 한다는 비현실적 해결 방안만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종교가 특정한 도덕 체계의 외골격이라는 관점이 더 설득력 있다. 혈연으로 묶이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기심과 불화를 억제하고 협동심과 신뢰를 형성해야 하는데,종교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 중 하나가 된다.

정치 또한 도덕 체계의 주요한 유형이다. 그래서 종교와 정치는 상호보완하기도 하고 경쟁하기도 하지만 또한 서로 쉽게 착종된다. 지난 역사를 보면 정치가 종교의 외피를 쓴 사례를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

동성결혼이나 낙태,유전자 연구 등에서 보듯 현대에서도 정치와 종교가 중첩된 영역이 적지 않다. 안타까운 점은 정치와 종교의 착종이 대부분 참극으로 끝났다는 것인데,정치적 폭력은 쉽게 정당화되지 못하지만 종교적 폭력은 통제 불가능한 광기로 쉽게 변질되고 신성화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끔찍한 테러가 발생한 프랑스의 경우에도 이미 16세기 말에 정치권력과 경제적 부를 둘러싼 갈등이 중소상공인 중심의 개신교와 왕과 귀족 중심으로 하는 가톨릭 간의 종교전쟁으로 탈바꿈해 불과 30년의 세월 동안 무려 400만~7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규모로 따지자면 20세기 벌어진 크고 작은 비종교적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의 수가 훨씬 많지만, ‘집단 흥분’ 상태에서 자행된 종교전쟁은 대량 살상무기가 동원된 현대의 전쟁보다 더 끔찍하고 처참했다.

간명한 해법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것,특히 종교적 권위보다 정치권력을 우위에 두는 것이다. 정치적 권력과 종교적 양심을 별개의 영역에 귀속시키고,종교적 자유를 보장하되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 종교적 관용을 강제해야 하는데,이는 종교적 결단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와 정치의 복원과 강화의 문제다. 결론적으로 특정 종교와 죄악은 무관하며 이슬람과 테러도 아무런 연관이 없다. 하지만 국가공동체와 정치가 붕괴된 지역에서 종교적 근본주의와 테러가 싹튼다.

시리아,이라크,아프가니스탄,리비아 등등 내전이나 외침으로 인해 국가공동체가 붕괴된 빈자리에서 알카에다와 탈레반,이슬람국가(Islamic State, IS)가 성장한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수니파와 시아파를 불문하고 정치가 안정화된 나라들에서 테러리스트는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를 반증한다.

따라서 프랑스의 ‘피의 보복’이 아이에스를 제거할 수는 있지만 그 폐허 속에 국가공동체와 정치를 재건하고 종교를 복속시키지 못한다면 제이 제삼의 아이에스가 출현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또한 프랑스 국내 정치에서 소외된 아랍계 이민자들이 대변되지 못하고 극우파의 위협만 계속된다면 자생적 테러리스트는 양산될 것이다. ‘헬조선’과 ‘흙수저’,우리의 국가공동체와 정치는 정말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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