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배

강원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전철역 주변을 지나치다 연인으로 보이는 이들을 만났다. 그들이 먼저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어디로 가면 볼 만한 것을 만날 수 있나요?”

아마 주말이어서 도시의 복잡함을 떠나 강원도 이곳까지 온듯하다. 강원도로 여행한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계획하고 편리한 대중교통을 이용해 왔는가 보다. 거기에 가면 분명 뭔가가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잔뜩 안고 온 표정이다. 그러나 나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어디에 가면 무슨 볼만한 것이 있으니 어서 가보라고 할 만한 것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습관처럼 스마트 폰을 꺼내 뒤적거렸다. 그들의 얼굴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고 그들을 의식한 나는 연실 손가락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러나 마찬가지였다. 이번 주에는 특별한 행사가 없어 보였다.

“주로 데이트 하는 장소가 저쪽이니까 그곳으로 가보세요.”

돌아서는데 등이 서늘했다. 지역을 잘 알 것 같은 이를 선별하여 물었는데,돌아오는 대답이 너무 성의 없다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모든 정보를 뒤적거리는 성의는 보였다고 스스로 위안했다.

문화는 일정 지역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만들어가는 행태와 그 산물이다. 새의 깃털이 땅에 떨어져 있으면 그냥 자연물이지만,한 소녀가 그것을 머리에 꽂으면 문화가 시작된다. 그것을 본 다른 소녀들이 예뻐 보여 마을의 모든 소녀가 깃털을 머리에 꽂으면 그 마을 소년들의 문화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는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일정 지역을 들어서면 고유한 문화가 있다.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니고 계획을 미리 세워 추진한 일도 아니다. 그 지역의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일정한 패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타 지역에서 여행 온 이들은 그것을 보고 싶어 한다.

홍콩을 여행했을 때 일이다. 나의 재정상태가 빈약한 까닭도 있었지만 그들의 문화를 생생하게 느끼고 싶어 일부러 걸어서 도시를 여행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고 긴 육교와 해안도로를 따라 걸었다. 무엇보다 크게 얻은 것은 뒷골목의 풍경이었다. 늘어진 빨랫줄에 걸린 색색의 옷가지들을 보면서 그들 삶의 냄새를 진하게 느꼈다. 빌딩 사이로 쏟아지는 화려한 레이저 쇼와 그네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쇼핑몰들이 있었지만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교복을 입고 시끄럽게 복도에서 떠드는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과 매캐한 연기 자욱한 사당 안에서 연실 복을 기원하는 굽은 등을 보며 문화가 무엇인가 하는 걸 어렴풋 깨달았다.

강원도는 문화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다. 문화적으로 낙후되었다는 의식이 일정부분 스며들어 있다. 따라서 문화를 만들기 위해 무언가 계획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다. 예산을 투입하고 그 결과를 초초하게 기다렸다가 분석하는데 분주하다. 그럼에도 문화적으로 별 소산이 없다고 투덜대곤 한다. 이것은 아마 문화에 대한 정의가 어긋난 데서 기인한 일일 것이다.

저녁 즈음 오전에 만났던 연인들을 다시 스쳤다. 그들은 나를 의식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들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둘 다 밝은 얼굴이었다. 내가 알려준 장소에서 좋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알려준 장소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나와 공연도 하고 중고물건도 내다파는 장터였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작은 생활품들과 삶의 때가 묻은 물건들 그리고 지역 음악인이 여는 공연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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