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희경

춘천지법 기획·공보판사

최근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를 즐겨 보고 있다.

‘따뜻한 말 한마디’라는 제목의 지난 회 방송분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벌컥 눈물을 쏟고 말았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가족이 서로에게 나눈 따뜻한 말 한마디 때문이다.

여기에는 심장수술을 거듭 받아야 하는 아들과 그 수술비를 대야 하는 부모가 힘들게 살아오다가 기적 같은 복권 당첨으로 가난에서 벗어나게 된 한 가족이 등장한다.

살림이 넉넉해진 이후 아들은 비교적 간단한 수술을 추가로 받아야 했고,더 이상 수술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가족들은 그저 덤덤하게 아들의 수술 준비를 하는 듯 했다.

그러나 수술 전날 밤 아들이 어머니에게 ‘어머니는 강한 사람이지만,나(아들)는 몸도 마음도 약하다’고 말하면서 다가올 수술에 몹시 불안해하며 하소연하였다.

이러한 두려움은 가난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던 까닭이었다. 어머니는 그간 힘든 수술을 거듭 견뎌낸 아들의 고생을 떠올리며,그리고 그런 아들을 옆에서 지키며 수술비를 벌기 위해 안 해본 일 없던 힘든 과거를 그리며 이렇게 답한다.

‘네가 엄마보다 훨씬 더 강하고 대단한 사람이다’라고….

“말은 마음을 담는다.그래서 말에도 체온이 있다.이 냉랭한 세상이 그나마 살만하도록 삶의 체온을 유지시켜 주는 건,잘난 명언도 유식한 촌철살인도 아닌,우리의 투박한 체온이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라는 나레이션이 이내 가슴에 스며든다.

얼마 전 군법원 재판을 가는 길이었다.

아직 11월인데도 그날따라 새벽부터 눈이 많이 내려 주변 산에는 흰 눈이 제법 쌓였다.

벌써 겨울인가.부쩍 차가워진 공기를 느끼며 법정에 들어섰다.

법정에는 그간의 분쟁으로 법정을 오갔던 분들이 다시 자리를 마주하고 있었다. 한참동안 그분들의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원고도,피고도 각기 자신의 입장에서 억울한 부분이 있었다.

어느 한편이 절대적으로 억울하거나 절대적으로 잘못한 것이 아니다.

저마다의 입장 차이에 의도치 않은 불행이 더해져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이다.

법정에서 그리고 조정위원과도 원·피고 모두 충분히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상대방의 입장도 들은 결과 서로의 입장 차이를 좁힐 수 있었고 그날의 분쟁은 서로 조금씩 양보하여 화해가 되었다. “눈이 많이 내렸네요.그동안 법원에 다녀가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조심해서 들어가세요.”

화해가 성립되어 법정을 나가려는 이들에게,그간 분쟁으로 인해 마음 쓰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원만히 해결되어 두 분께 모두 잘 되었다는 생각에 나지막이 인사를 드렸다.

원고도,피고도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법정의 문을 나섰다.

재판이 이뤄지는 법정은 그야말로 치열한 공방이 일어나는 곳이다. 대립되는 주장에 맞서 진실을 찾기 위한 긴장감이 내내 감돈다.

법관은 어느 한편을 섣불리 지지할 수 없기에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한편 재판이 이뤄지는 법정은 분쟁을 해결하는 최종의 목적뿐 아니라 그 목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도 법원을 찾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법정에 온 사람들은 저마다의 억울함이 있고 승소와 패소를 떠나 분쟁으로 인해 마음이 힘든 상태다.

그러하기에 ‘법정이야말로’ 그 어느 곳보다 ‘갈등과 번뇌로 차갑게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으로 헤아려 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 곳’이 아닐까?

차가운 말로 상대를 시리고 휑하게 만들기 보다는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로 서로를 배려하는 따뜻한 법정이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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