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수

환동해학회장·국학박사

지난 천년 동안 강원도를 대표해온 문화유산은 관동팔경이다. 신라시대 화랑들의 심신수련장으로 각광받았던 전통이 고려와 조선을 이어 오늘날까지 그 명성을 유지하며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관동팔경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조선시대 대문장가였던 송강 정철이 1580년(선조13)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관동지역의 경승지를 유람하고 ‘관동별곡’이란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당대 문인 사대부들에게도 호평을 받았지만 오늘날까지 한국 가사문학의 최고봉을 이루는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고,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림으로써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에게 친근하고 품격있는 명승으로 거듭나게 했다. 강원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송강 정철선생께 감사한 마음을 표하며,여기서 감사인사를 드려야 할 또 한 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고려시대 경기체가 형식의 ‘관동별곡’을 지은 안축(安軸)선생이다. 안축은 1330년(충숙왕17) 강원도 존무사로 재직하다 돌아오는 길에 관동지방의 뛰어난 경치와 유적 및 명산물에 감흥하여 ‘관동별곡’이란 작품을 남겼다. 안변의 학성,고성의 총석정·삼일포,속초 영랑호,양양 풍경,강릉 경포대와 한송정,삼척 죽서루,정선의 절경을 노래한 이 작품은 조선시대 정철의 ‘관동별곡’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안축은 ‘관동별곡’ 외에도 죽서루의 감흥을 읊은 시 두 편과 함께 ‘죽서팔경’이란 새로운 풍경을 포착하여 선물했다. 대나무밭 속의 오래된 절(竹藏古寺),바위로 둘러싸인 맑은 못(岩控淸潭),산기슭에 의지한 시골집(依山村舍),강에 걸려있는 외나무다리(臥水木橋),소 타고 가는 목동(牛背牧童),밭머리에 들밥 나르는 여인(壟頭婦),물가에서 고기 세기(臨流數漁),담장 너머 스님 부르기(隔墻呼僧)… 죽서루 주변의 소소한 풍경까지 정감있게 그려내고 있는 안축의 ‘죽서팔경’은 이후 이달충·이곡 등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문인과 조선시대 이원진·민수천·최연 등의 문인들에 의해 계승되어 죽서루의 아름다운 풍경을 확대 재생산했다. 이렇게 보면 삼척의 죽서루가 관동팔경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명승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이 바로 안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서루는 관동팔경 가운데 제1경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가장 한국적인 건축양식 뿐만 아니라 바닷가 위치하여 일출을 감상하는 7경과는 달리 강가에 위치하여 석양을 음미하며 오십천에 배를 띄워 죽서루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경치를 갖는 독특함으로 인해 많은 시인 묵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오늘날에도 죽서루는 삼척을 대표하는 문화유적이고 관광자원이다. 삼척시에서도 죽서루가 갖는 역사성과 예술성에 주목하고,삼척도호부의 객사·동헌 등의 유적복원과 함께 죽서루 경관조성과 풍류재현사업을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유적을 복원하는 것은 조선시대 지방관아 건축이라는 모델이 있지만 경관조성과 풍류재현은 정해진 기준이 없어 매우 어려운 사업이다. 지금 죽서루 주변은 현대식 건물들로 가득하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죽서팔경은 그야말로 전설이다. 조선시대 양식의 누각과 주변의 현대식 건물들과의 조화,참으로 어려운 숙제라고 하겠다. 관동팔경 가운데 시내에 위치한 삼척시만의 고민이기도 할 것이다. 문화재청에서도 여러 가지 자문을 해주겠지만 이것은 순전히 삼척시의 몫이다. 지금까지 창조적인 마인드로 다양한 관광사업을 추진하여 큰 성과를 올리고 있는 삼척시 공무원들의 역량을 잘 알기에 죽서루의 경관조성과 풍류재현사업에 거는 기대가 크다. 21세기 새로운 형태의 ‘죽서팔경’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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