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현주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2007년 9월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당시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열린 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 경선 유세를 구경하러 갔다. 당원도 아니었고 딱히 지지하는 후보도 없었다. 단지 선거 캠페인에 대한 학술적 관심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을 지켰다. 긴장감이 넘치면서도 들뜬 분위기였던 것 같은데 당시 후보들의 유세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행사가 끝난 후 후보들의 상반된 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선하게 남아있다. 지지자들과 뒤섞여 남은 열정을 쏟아내던 다른 후보들과는 달리 한 후보는 단상을 내려오자마자 모든 취재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인터뷰에 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 단면을 본 것에 지나지 않지만 나는 속으로 저 분이 비록 지명도는 높아도 대중 정치인으로 더 성공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그는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다.

최근 새정치를 표방하며 광야로 나선 안철수 의원. 직접 유권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에 밀착하기 보다는 성명서와 기자회견,간담회를 통한 정치에 집중하고 있는 그의 행보에서 나는 예전 그분의 모습을 떠올린다. 물론 총선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에 조급해진 마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현대 정치를 미디어 정치라고 하듯이 유권자에게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각인시키기에 언론만큼 효율적인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안 의원의 언론 지향적 공중전은 지금까지 꽤나 성공적인 듯하다. 안철수는 강철수로 부활했다.

주위에 사람들도 모여들고 지지율도 상승곡선을 탔다.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지계를 거론하는 평론가들도 있다.

그러나 언론이 만들어 내는 정치 세력과 여론은 허상에 가깝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일거수일투족은 언론에 의해 무한 복제되어 실체로 굳어지는 듯 보이지만 말잔치는 금방 시들해지고 언론도 덤덤해지기 마련이다. 화려한 조명이 꺼지는 그때부터는 정말 콘텐츠의 문제가 된다. 냉정한 말이지만 안철수 의원이 정계입문 후 보여준 새정치에는 알맹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제안은 새정치가 아니라 유권자들의 정치 혐오에 편승한 반(反)정치에 다름 아니었다.

기초단체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자는 주장도 책임정치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시대에 역행하는 발상이었다. 새정치의 복음을 앞세우고 등장한 안철수라는 메시아,‘신의 아들’은 4년의 시간동안 유권자들의 열망에 부응하지 못하는,너무나 평범한 ‘사람의 아들’임을 드러낸 것이다.

안철수 의원을 포함해서 모든 정치인들이 새정치나 혁신을 말하기 이전에 올바른 정치부터 실천해야 한다.

올바른 정치는 국민,유권자를 먼저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얼핏 너무나 옳고 당연하고 또 쉬운 말이지만,기자들을 대동해 카메라 앞에서 환경미화원을 만나 위로하고,경로당을 방문해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목장갑을 끼고 연탄을 나르는 정도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유권자들을 언론 노출을 위한 배경 정도로 활용하는 정치는 새정치가 아니라 낡은 정치,올바른 정치가 아니라 그릇된 정치일 뿐이다. 이는 정치인 개인의 실패만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더 중요하게는 유권자들 또한 정치적 좌절과 냉소주의의 큰 상처를 입는다. 최근 안철수 의원의 퇴행적 정치 행보가 걱정스러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언론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유권자들을 보고 듣고 이해하고 그 속에서 구체적인 정치적 비전,알맹이를 만들어 내야 비로소 올바른 정치로 인정받게 된다. 이제라도 안철수 의원은 언론,총선 예비후보자들의 환호와 함께 하는 새로운 정치는 버리고 유권자 속으로 들어가 올바른 정치를 새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그 자신의 권력의지도 정당화되고 한국 정치 또한 한걸음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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