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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힐 권리와 기록할 의무

이정배 2016년 01월 04일 월요일
   
▲ 이정배

강원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지난해 강원도가 발 빠르게 대응했던 몇몇 사안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잊힐 권리’(‘잊혀질’은 이중으로 피동을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말 문법에 어긋남)이다. 지난해 10월 31일,강원도는 잊힐 권리 조례를 제정·공포함에 따라 잊힐 권리를 세계 최초로 법제화하였다고 한다. 강원도는 이미 2015년 8월 17일 특허권리사인 마커그룹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후,10월 21일 잊힐 권리 사업화 전담 법인인 주식회사 달(DAL)을 설립했다. 그래서 2016년 1월 1일부터는 강원도청 홈페이지에서 세계 최초로 잊힐 권리 솔루션인 ‘DAS-파일업로더’ 기능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했다. 신속히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고 나름의 길을 모색한다는 면에서 바람직한 처신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빠르다는 것만으로 박수칠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을 가져본다.

신형 스마트 폰이 세계 각국에서 동시 출시될 때 간혹 우리나라가 제외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는 이들이 있다. IT강국인 우리나라에서 당연히 제일 먼저 출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강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한다. 문제의 핵심이 표준화에 있다는 걸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잘 알고 있다. IT 산업은 국제표준화를 누가 어떻게 얻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형 제품들의 출시가 늦어지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표준화와 인증을 거치는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잊힐 권리’에 관한 솔루션을 홈페이지에 장착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표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잊힐 권리’에 관한 법률은 국회에 아직 머물러 있다. 법률이 통과되어 만일 별도의 새로운 표준이 제시된다면 현재 추진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빠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정확함이라는 것을 모두가 익히 알고 있다.

어찌 보면 강원도가 우선 주력해야 할 일은 기억을 제거하는 사업보다 기억을 수집하고 저장하는 아카이브사업일지 모른다. 타 시도에 비해 강원도의 정보량은 상대적으로 적다. 지역적 특성 때문에 영동과 영서를 아우르는 질 높은 정보를 수집하고 제공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전반적으로 축적된 정보가 대단히 미약한 상황이다. 농산물 생산구조와 유통과정,강원도를 찾는 관광객의 취향과 패턴 등을 파악하여 산업에 적용시키려면 빅데이터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열악한 정보 상황의 흐름을 냉정하게 가늠할 필요가 있다.

강원도는 전국 시도 자치단체 중에서 영상위원회가 없는 유일한 곳이다. 제주도까지 갖추고 있는 영상위원회는 영화에 관련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필요한 이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많은 영화인들이 강원도를 영화촬영의 적지로 꼽고 있다. 서울과 가까우며 영화의 배경으로 삼을만한 좋은 장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영상위원회가 없기 때문에 영화와 관련한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인력에 대한 자문도 받지 못한다. 몇몇 영화인들만이 강원도에서 암암리에 촬영하고 배경지에 대한 홍보도 하지 않는다. 결국 영화산업이 강원도에서 도외시는 되는 가장 큰 원인이 영화에 대한 정보부재에 있다는 걸 말해준다.

정보의 열악함은 영화분야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미술,음악,춤 등의 제반 문화예술분야의 정보 역시 미약하다. 지난 세월동안 강원도에서 어떤 공연과 전시회가 어떻게 열렸으며 어떤 문화예술인들이 어떤 분야에 활동하는지 정확한 정보가 없다. 역사적인 공연이나 출판에 대한 정보 또한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 등지에서 강원도로 이주하여 자리 잡은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다. 역으로 중앙에서 활동하고 있는 강원도 출신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정보 역시 정확하게 갖고 있지 못하다.

복잡하고 다양화된 시대에 정보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질 높은 정보를 확보하고 정책적으로 제대로 분류하여 공급하는 일은 제반 산업의 기반작업이다. 질 낮은 정보나 쓸모없는 정보를 제거하는 일 또한 귀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정보가 과다하게 축적되었을 때 나올법한 이야기다. 새해에는 보다 좋은 정보정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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