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현주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쟁점 법안을 처리해 달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 신년 기자회견과 국무회의에서 국회를 강도 높게 비판한 데 이어 최근 중소기업 현장 방문에서도 거침없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야당을 압박하는 일을 무작정 불통정치라고 비판할 수는 없다. 그 또한 정치적 전술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직 압박만 하고 대화와 타협에 나서지 않는다는,그리고 더 큰 문제는 실제 법안의 내용이 여야의 합의로 쉽게 처리할 수준이 아니라는 데 있다.

가장 쟁점이 되는 파견법의 개정 내용은 비정규직의 범위를 확대하자는 것이고 근로기준법 개정의 취지도 법정 근로시간을 늘려 휴일이나 야간 등 시간 외 근로에 할증되던 비용을 줄이자는 것이다. 기업은 환영할만하다. 인력난을 겪는 중소기업은 추가적인 고용 없이도 동일 비용으로 직원의 근로시간을 늘려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높아 인력조달이 용이한 대기업은 파견법이 개정되면 비정규직의 비율을 늘려 임금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봐서 고용의 총량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기업이 정규직을 부담스러워 하니 비정규직으로 쉽게 해고할 수 있게 해주면 고용도 늘릴 거라는 가정은 비정규직 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난 20년 넘는 기간의 경험과도 상반된다.

게다가 근로시간까지 늘린다면 이미 고용된 정규직,비정규직 인력을 더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니 추가 고용의 동기가 줄어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기업의 고용과 임금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것인데,이는 곧 근로자의 고용불안과 소득 감소를 의미한다. 따라서 민생법안 같은 정치적 수사로 야당을 압박해 처리할 일이 아니라 사회적 타협이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대통령은 여태껏 야당을 포함해 반대 여론을 압박하기만 했다. 물론 대통령의 확고한 지지층은 법안의 내용을 따지지 않는다.

무지하거나 이해관계가 걸려있지 않아서가 아니다. 대통령을 믿기 때문에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이해관계가 첨예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일단 의심부터 하고 반대할 이유를 찾는다. 이 또한 인지상정이다. 이들과는 토론해야 하고 설득이 안 되면 읍소하고 양보해야 한다. 실패하더라도 상대에 대한 비난보다는 대통령의 자기 성찰이 앞설 때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나눠질 수 있다.

사실 법령을 개정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대통령의 정책결정 수단은 많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행정부 독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역대 어느 정부보다 주어진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해 왔다.

대통령과 경제부처 장관들이 처리되지 못한 몇몇 법안 때문에 목표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탓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강만수 기재부 장관은 원 없이 돈을 써봤다고 말해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약간의 자기 과시에서 비롯된 말일지라도 그는 차라리 솔직했다. 반면 정부가 하고 싶다는 거 다 하게 해주고 나중에 비판하는 것이 민주주의 아니냐는 최경환 전 기재부 장관의 최근 발언은 선거를 앞둔 정치인의 말이라고 이해해주기에는 너무나도 몰염치하고 선동적이다. 그 또한 정권의 막강 실세로서 야당과 경제전문가,여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초이노믹스’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면서 하고 싶은 정책은 원 없이 다 해봤기 때문이다.

결국 몇몇 법안을 둘러싼 최근의 대립과 책임전가는 선거를 앞둔 정치공학적 계산의 산물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임기 2년을 채 남겨두지 않은 대통령과 정권 핵심부가 선거 결과와 레임덕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럴수록 국민 앞에 좀 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정부는 남은 2년의 국정과제를 정리해서 제시하고 여당은 새로운 비전을 내놓아서 지지층을 결집해야지 허구적인 책임전가에 기대서는 안 될 것이다. 만들어 낸 말과 프레임은 준엄한 현실 앞에서는 거품처럼 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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