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수

춘천지법

국선전담 변호사

누명을 쓴 전직검사의 법정투쟁을 다룬 영화 ‘검사외전’이 관객 1000만을 앞둘 정도로 인기다.

얼마 전 이 영화를 본 한 관객이 물었다. “피고인이 저렇게 돌아다니면서 말해도 돼요?”

피고인(황정민)이 법대 앞으로 나와 변호사처럼 열변을 토하는 장면이 있는데,실제 재판에서도 그게 가능한지 궁금했던 것이다.

대중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재판에 대한 선입견을 갖기 마련이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법정의 모습 중에는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편견이 적지 않다. 그 때문에 재판을 보러 갔다가 기대와 다른 모습을 보고 실망하는 사람도 있다.

영화와 실제가 다른 대표적인 것은 변론 장면이다. 영화 속 변론은 화려하다.

영화 ‘변호인’에서 변호사는 증인으로 나온 경찰관을 신문하면서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은 학생들이 국보법을 위반한 것이냐면서 호통을 치기도 한다.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변호사는 지하철 무가지 수십 부를 법정에 들고 와 “이 절도범에게는 신문 몇 부가 생존이었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실제 법정 모습은 어떨까? 변호인과 검사는 법정에서 매우 절제된 언행으로 입장을 전달한다. 굳이 법대 앞까지 나와 ‘오버’를 하지도 않는다.

구체적인 공방은 서면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앞에서 황정민처럼 피고인이 법대 앞으로 나오려는 순간,교도관과 법정경위는 서둘러 피고인을 제지할 가능성이 높다. 영화와 달리 조용하게 진행되는 재판을 보며 방청객은 따분하게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형사소송법이 상정하는 원칙적인 모습은 오히려 영화에 가까울지 모른다. 법은 당사자가 법정에서 말로 공격·방어하고 재판이 이루어지는 ‘구두변론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재판은 점차 구두변론주의를 향해 발전하고 있다. 특히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된 후로는 검사와 변호인이 법대 앞으로 나와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사건을 설명하고,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며 배심원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한다. 영화에서나 보던 풍경이 실제로 연출되는 것이다.

지난 1월 춘천지방법원에서도 참여재판이 열렸다. 폭행을 당한 후 잠을 자다가 숨진 친구의 죽음까지 가해자가 책임져야 하는지가 쟁점이었다(본지 2월 1일자 보도).

이날 이목을 끈 것은 법정을 꽉 채운 방청석이었다. 관계자 외에는 거의 방청을 하지 않는 게 평소 재판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림자배심원은 물론,법조인을 꿈꾸는 학생,일반 시민도 적지 않았다.

2008년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은 우리 재판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시민들은 과학수사에 대한 높은 기대를 가지고 있고,영화처럼 완벽한 증거를 원한다. 참여재판의 무죄율이 약 5.7%로 1심 형사합의사건의 무죄율 3.2%보다 높은 것은 미디어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검사와 변호사 모두 배심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적극적인 ‘쇼’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우리 재판이 영화에 한 걸음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물론 영화 속 법정 모습은 흥미를 위한 연출인 경우가 많아 과장된 측면이 있을 터. 모든 재판이 외관상 치열하고 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당사자의 운명을 가를 수 있는 순간에 ‘보이는 흥미’가 반드시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보다 당사자의 인권을 보호하면서 실체 진실을 찾아가고,재판 결과를 수용할 수 있게 만드는 공정한 과정이 재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실의 재판이 영화와 꼭 같지 않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물적·인적 한계가 존재하는 한 모든 재판을 참여재판처럼 진행하기는 어렵다. 진실 추구는 법정 안에서뿐만 아니라,판사·검사·변호사 및 당사자의 위치에서 치열하게 현재 진행형이다.

이 점에서 위안을 얻는다. 오늘도 춘천지방법원,검찰청 불은 쉽게 꺼지지 않고 있다.



▶약력= △경찰대 졸업 △서울지방경찰청 경위 △제52회 사법시험 △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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