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강하

강원대 HK연구교수

2016년 3월 9일,기다리던 대결이 시작됐다.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 그것이다. 딥러닝(Deep Learning)을 통해 스스로 패턴을 찾고 학습해온 인공지능 알파고는 이미 지난해 유럽바둑챔피언인 프로기사 판후이 2단과의 대결에서 전승을 거두었다. 이번 대국 이전부터, 알파고 개발자들은 알파고가 이미 천년의 시간을 수련해왔다며 이번 대국의 승리를 자신했고,이세돌 기사 역시 이번 대국에서 질 자신이 없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 팽팽한 첫 번째 경기의 승리는 알파고에게 돌아갔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바둑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복잡한 게임으로,고도의 사고능력을 요구한다. 이 게임의 승패를 두고 인간의 자존심 운운하는 것은 결코 호들갑이 아니다. 이번 게임에서는 이기겠지만,다음 게임은 장담할 수 없다는 이세돌의 말에서는 진화를 거듭하는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도 읽힌다.

실제로 인공지능은 인간과의 두뇌 게임에서 빠른 속도로 인간을 넘어서고 있다. 지난 세기,인공지능 딥블루는 체스 세계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와의 체스 게임에서 이겼고,2011년에는 IBM에서 제작한 수퍼컴퓨터 왓슨이 미국의 인기 퀴즈쇼인 제퍼디에 출연해 우승했다. 인간의 지능이 만들어낸 컴퓨터가 이제 인간의 사고 능력을 앞서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속도라면 지식의 습득,판단,인지 능력의 향상과 더불어 인간의 욕망까지 배우는 인공지능의 출현도 가능해 보인다.

똑똑한 기계,인공지능의 출현이 반길 일만은 아니다.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는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스티븐 호킹은 인간의 진화 속도가 기계의 진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고,따라서 여기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을 심각하게 바라보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물론 낙관론자들은 똑똑해진 인공지능이 인간의 도덕과 윤리도 학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도덕적 타락이나 무한정한 욕망을 추구하는 인공지능의 탄생이 가능하다는 말과도 통한다.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 실현되는 것은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기계와 컴퓨터가 사람들에게 편의를 가져다 준 것은 사실이지만,이들은 인간의 삶에 위협적인 요소가 되고 있기도 하다. 향후 20년 안에 기계와 컴퓨터가 약 절반의 일자리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은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몇 년 사이 내 주변에서도 기계가 인간을 대신해가고 있는 상황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무인주차정산기와 식권판매기 등장 등의 작은 변화가 그것이지만, 그 변화는 일상에서 사람들이 사라지는 삭막한 풍경으로 이어졌다. 사라진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사람들 사이에 짧은 인사,미소,따스함,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들이 동시에 사라져버렸다. 기계화를 통한 인건비 절감이라는 당당한 이유 앞에서 희망과 불안이 교차한다.

인간은 왜 기계와 컴퓨터를 만들었을까? 그것은 보다 편안하고 안락한 삶에 대한 장밋빛 기대와 전망 때문이었다. 기계는 사람들을 노동과 위험에서 해방시키기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계와 컴퓨터의 능력이 배가될수록 사람들은 삶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기계는 인간의 조력자에서 무자비한 경쟁자가 되어 가고 있다. 기계와의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삶을 한번쯤 되돌아보았으면 좋겠다. 인간은 기계와의 지식 경쟁에서 밀릴 테지만 인간의 삶이 지식만으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사람이 있었으면,좋겠다.

▶약력= △문학박사(연세대학교, 중국고전문학) △강원대학교 HK연구교수 △한국통합문학치료학회 이사 △<인문학, 아이들의 꿈집을 만들다>, <논어쿵푸스> , <아름다움, 그 불멸의 이야기> 등 10권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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