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원

소설가

나무가 꽃을 피우고 새싹을 내미는 봄이 왔다. 아직 잎을 내미는 나무는 없지만, 나뭇가지마다 봄기운이 느껴진다. 나무들 역시 겨울잠을 자는 동안 깨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봄과 은성한 여름을 떠올렸을 것이다. 정원의 꽃나무들도 하나 둘 새봄 속에 기지개를 켠다. 그 속에 오랜 친구이자 인생의 길벗처럼 떠오르는 나무가 있다.

“얘야, 첫 해의 꽃으로 열매를 맺는 나무는 없단다. 그건 나무가 아니라 한 해를 살다 가는 풀들의 세상에서나 있는 일이란다.”

“밤 한 알을 화로에 묻으면 한 사람의 입이 즐겁고 말지만, 그걸 땅에 묻으면 백년을 두고 화로에 묻을 밤이 나온단다.”

어릴 때 늘 할아버지에게 듣던 말이었다. 실제로 내가 태어나고 자란 시골집 뒤에 커다란 밤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지금으로부터 106년 전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이다. 할아버지는 밤나무 외에도 평생 집 안팎에 참으로 많은 나무를 심었다. 가을마다 수백 접의 감이 열리고, 자두나무와 앵두나무, 석류나무가 울타리를 대신했다.

할아버지는 열네 살의 나이로 한 집안의 살림을 맡으며 결혼했다. 신부는 할아버지보다 어린 소녀였다. 결혼하던 해 두 사람은 산에서 밤 다섯 말을 주웠다. 어린 신랑과 신부는 식량이 떨어져 냉이뿌리와 칡뿌리로 고픈 배를 달래면서도 가을에 주운 밤을 먹지 않고 이듬해 봄 민둥산에 그것을 심었다.

민둥산에 밤을 심은 어린 신랑과 어린 신부가 없었다면 밤나무로 울창한 숲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시골집 뒷마당에서 서 있는 밤나무가 백 년도 넘는 긴 시간 동안 매년 굵은 밤알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된 데에는 그곳에 씨밤을 심고, 그것을 보살펴 준 어린 부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집터를 확장할 때에도 할아버지는 다들 베어내라는 그 나무를 베어내지 않았다. 이미 온 산이 밤나무 숲을 이루어 그 나무 한 그루가 없어도 집안 살림엔 그다지 아쉬울 게 없을 때인데도 그랬다. 그 나무를 베어버렸다면 지금과 같은 커다란 밤나무가 시골집 뒷마당에 서 있을 수 없다. 그런 걸 생각하면 사람과 나무 사이에도 우정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공부를 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혼자 미래를 준비하는 삶의 지혜를 얻어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할 민둥산에 밤 다섯 말을 고스란히 심어 그곳을 밤나무 산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삶의 지혜로서만이 아니라 나무와 자연을 사랑하고 더불어 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할아버지는 오래전 세상을 떠났지만,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들은 아직도 할아버지의 분신처럼 집안과 동네 안팎에 남아 그곳에 갈 때마다 우리를 반긴다.

집안의 아이들도 그 나무를 할아버지 나무라고 부른다. 두 사람이 안아야 겨우 안을 수 있을 만큼 몸집이 커다란 그 나무는 너무도 오랜 세월을 살아오느라 밑동도 썩기 시작하고 중동도 부러져 삶의 기력을 다한 할아버지의 모습처럼 되었다. 아마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만 아니었으면 벌써 베어졌을지도 모른다. 온 식구가 그 나무를 할아버지의 분신처럼 여기는 것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되면 다 죽은 듯싶은 나무에서 어김없이 새 순이 돋고 새 잎이 나와 다시 한 광주리의 밤송이를 맺는다.

시골집 뒤에 있는 할아버지밤나무만이 아니다. 들판에 흉년이 들 때면 평년보다 더 많은 도토리를 준비하는 참나무, 예쁜 꽃과 열매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과실나무 등 나무는 매해 쉬지 않고 자신을 존재하게 해준 세상에 더욱 많은 선물을 놓고 간다. 나이든 나무를 보면 그들이 지나온 삶에 저절로 숙연한 마음이 든다.



▶약력=△강릉출생 △동인문학상·현대문학상·이효석문학상 수상 △강릉 바우길 개척 △주요저서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수색 그 물빛 무늬’,‘그대 정동진에 가면’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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