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길

환동해문화학회

편집위원장

강릉(江陵)이란 지명은 ‘물 강’, ‘뭍(구릉) 릉’이다. 물과 구릉으로 이뤄진 마을이란 뜻일까? 하여튼 강릉엔 물과 땅의 온갖 산물들이 풍부해서인지 그만큼이나 얘깃거리들이 많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설도, 유품도, 그리고 무형문화 할 것 없이 너무 많다 보니 인구 20만의 작은 도시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도 간혹 벌어진다.

태권도공원, 홍길동 캐릭터, 이사부 원조 논쟁도 그렇다. 관리할 건 너무 많고, 인구는 부족하고, 그렇다 보니 천려일실로 놓치는 게 아마 한두 개는 넘을 거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강릉이 놓치고 있는 것 중에 ‘소설’이 있다.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쓴 김시습,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을 쓴 허균, 최초의 신소설을 쓴 아서 노블(강릉중앙감리교회 제3대 목사, 1866~1945) 등이 강릉과 연관이 있다.

최초의 신소설은 그동안 국초 이인직이 쓴 혈의루(1906년)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몇 년 전 아펜젤러기념사업회에서 아펜젤러100주년기념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아서 노블의 단편소설 ‘순이’(1902년)와 장편소설 ‘이화’(1906년)로 말미암아 이 소설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짓는가가 화두로 제기되었다.

한국소설가협회는 이 작품을 최초의 신소설로 인정하였다. 사실 한국의 소설이 되려면 적어도 3가지 점에서 한국적이어야 한다. 한국인이, 한국어로, 한국의 내용을 써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순이’와 ‘이화’가 과연 한국인이 썼고 한국어로 작성되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최초의 신소설 운운은 사실 일부 곤란한 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근래의 확장된 정의에 따르면 한국인이 외국어로 써도(예를 들면, 김은국의 ‘순교자’) 한국작품으로 인정을 했고, 더불어 외국인이 한국적인 내용을 쓴다면 이 또한 한국작품이 아닌가 하는 점을 집중 토의한 바 있었다.

아서 노블의 두 작품은 한국 소설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작품인 것은 분명한 것이다. 사실 엄밀하게 따져 보면 ‘최초의 ○○소설’이 강릉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는 할 수가 없다.

김시습의 ‘금오신화’, 허균의 ‘홍길동전’도 강릉과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다. 더구나 아서 노블의 경우는 외국인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삶이 강릉과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맺고 있는 한 강릉과의 관련성을 전면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다.

아서 노블은 1909년 3월 1일자로 강릉중앙감리교회에 부임하여 1912년 3월 3일까지 근무하였다. ‘최초의 ○○소설’ 운운이 강릉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고 있을 수도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문제는 강릉시민이 어떻게 이 재료를 가꾸는가에 달렸다.

이들 3인의 작품 외에도 흥미로운 작품이 이인직이 1908년에 쓴 ‘은세계’이다. 본래 상하 양권이었지만 하권은 현재 부전하여 온전히 그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등장인물과 배경이 강릉이다.

경금마을(현재의 금산)의 최병도가 주인공이다. 더구나 이 작품은 실전하는 판소리 <최병도타령>의 대본이기도 하거니와 어쩌면 한국 최초의 연극대본용 소설이기도 하다.

1908년 11월에 실제 원각사에서 공연된 작품이다. 아마도 이 작품은 강릉에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해야 할 가치가 있다.

결론짓자면 강릉은 이상하게도 소설의 메카가 될 수 있는 인문학적 재료들이 널려 있다.

이들 재료들을 어떻게 꾸미는가는 전적으로 강릉시민의 손에 달려 있다.

▶약력= △국가기록원 조사위원(현) △강원대 출강(현) △강원도민속학회 편집장(전) △강원국제민속예술축전 운영위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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