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선
밴드 ‘전범선과 양반들’ 보컬 및 기타

▲ 전범선
밴드 ‘전범선과 양반들’보컬 및 기타

나는 춘천에서 나고 자란 음악가다. 봄 ‘춘’ 내 ‘천’. 이름부터 아름답다. 하지만 낭만의 도시 춘천에서 음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춘천은 내게 풍부한 영감을 주었지만 내 음악적 꿈을 펼치기엔 척박했다. 춘천의 음악가는 춘천에 머무를 수 없었다.

스무살이 되는 해 서울로 갔다. 춘천에서 록 음악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 홍대 클럽 몇 군데서 오디션을 봤다. 밴드 ‘이스턴 사이드킥’에서 기타를 쳤다.

“먹고 사는 건 그렇다 쳐도 / 마음 가둘 곳 하나 없는 건 / 좀 그렇다” 이스턴 사이드킥의 노래 ‘서울’ 가사다.

전라도 광주에서 올라온 형이 쓴 것이지만 홍대 앞 예술가 대부분이 공감할 것이다. 나도 처음엔 서울이 낯설고 어렵고 “좀 그랬다”. 막국수가 먹고 싶었다.

한국에서 음악을 하려면 왜 서울에 가야만 할까? 여기서 수도집중 현상을 개탄하고 지역균형발전 내지 지방분권을 주창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좀 더 개인적인 아쉬움을 토로하고 싶다.

난 왜 ‘춘천의 음악가‘로 남을 수 없었을까?

물론 난 춘천 ‘출신’ 음악가다. 김추자도 있고 뜨거운 감자의 김C도 있고 춘천 출신 음악가는 없지 않다. 하지만 말 그대로 난 춘천에서 ‘몸이 떠난’ 음악가일 뿐 나의 음악은 춘천과 거리가 멀다.

전범선과 양반들 1집 <사랑가>에는 ‘낙원 아파트’라는 곡이 있다. 종로에 혼자 살 때 나의 생가인 효자동 낙원 아파트를 그리며 썼다. 그게 다다. 내 음악에서 그 이상의 ‘춘천’은 찾아볼 수 없다.

현재 한국에서 뚜렷한 지역색을 가진 음악가는 드물다. 한국 가수란 곧 서울 가수다. 물론 서울에 산다고 지역 특색이 묻어나는 곡을 쓸 수 없는 건 아니다. ‘소양강 처녀’를 쓴 반야월도 춘천 사람이 아니었다.

사무실 직원의 초대로 소양강변에 놀러 왔다가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 외로운 갈대 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를 본 것이다. 반야월은 충청도에 가서는 ‘울고 넘는 박달재’를, 경상도에 가서는 ‘비 내리는 삼랑진’을 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느 지역의 음악가도 아니다.

‘한국적’인 음악가는 많다. 전범선과 양반들도 한국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내가 아는 음악가 중 “이 분 음악은 참 대전스러워” 혹은 “역시 이 밴드는 제주 특유의 소리를 뽑아내는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미국을 보자.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로스엔젤레스의 햇살이, ‘너바나’는 시애틀의 구름이 만들어냈다. 뉴욕의 마천루 없이 ‘더 스트록스’의 세련됨이란 있을 수 없었고, 디트로이트의 폐허 없이 ‘에미넴’의 분노도 있을 수 없었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오아시스’는 맨체스터의 공장 굴뚝 연기를, ‘라디오헤드’는 옥스퍼드의 새벽 안개를 닮았다. 셰필드 사투리 덕에 ‘악틱 몽키즈’가, 브라이튼 사투리 덕에 ‘더 쿡스’가 한층 더 흥겹다.

결국 다양성의 문제다. 지방에서도 음악을 시작하고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대자본이 있는 서울로 가는 게 당연하겠지만 새싹이 틀 토양조차 없는 것은 좀 그렇다. 대구나 부산 같은 대도시에는 작게나마 음악 생태계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춘천도 그럴 수 있을까?

최근 고무적인 변화가 보인다. 2014년 열린 춘천 상상마당은 전국 최고 수준의 녹음실을 갖췄다. 전범선과 양반들 2집 <혁명가>를 거기서 녹음했다. 춘천 밴드 페스티벌은 올해로 3회째를 맞는다. 전범선과 양반들은 5월 13일 금요일에 출연한다. 내가 홍대로 떠나던 2010년에는, 다시 말하지만,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다. 춘천에서 록 음악을 하다니!

춘천시는 스스로 ‘로맨틱 춘천’이라 광고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춘천시가 추진하는 로프웨이니, 스카이워크니, 헬로키티 테마파크니 하는 것들이 낭만적인지 잘 모르겠다. 대규모 선사 유적지에 레고랜드를 짓는 것은 확실히 낭만적이지 못하다.

춘천이 ‘낭만의 도시’로 거듭나는 방법은 춘천의 음악가가 많아지는 것이다. ‘춘천 가는 기차’가 아닌 ‘서울 가는 기차’를 부를 가수가 탄생해야 한다. 나는 아직도 춘천의 음악가가 되고프다. 이번 주말에는 춘천에 내려가 소양강변의 봄길을 걸어야겠다. 어쩌면 즐겁게 지저귀는 두견새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전범선
밴드 ‘전범선과 양반들’보컬 및 기타


▶약력= △춘천 출신 △강원중·민족사관고·다트머스대 역사학·옥스퍼드대 대학원 역사학 석사 졸업 △밴드 ‘전범선과 양반들’ 보컬 및 기타 △전범선과 양반들 제1집 사랑가(2014), 제2집 혁명가(2016)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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